2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의장대들이 서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다음달 1일 반간첩법 시행을 앞두고 중국 교민과 주재원들이 긴장하고 있다. 9년 만에 개정된 중국의 반간첩법은 간첩 행위의 범위를 크게 넓히고 처벌 방법도 다양화했다.
중국 한 도시의 교민들은 최근 컴퓨터에 저장돼 있거나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는 사업과 관련한 통계 자료나 분석 자료 등을 없애고 있다. 평소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평범한 내용의 자료라도 곧 시행되는 개정 간첩법이 매우 강력하다는 얘기를 듣고 미리 준비에 나선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교민은 <한겨레>에 “최근 한-중 관계가 좋지 않고, 중국 내부 분위기도 안 좋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 법을 빌미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일단 자료를 삭제하는 등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와 주중 한국대사관도 최근 교민과 여행객 등을 상대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26일 누리집에 올린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 대비 안전 공지’를 통해 “우리나라와는 제도·개념 등의 차이로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중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방문 예정인 국민께서는 유의해 달라”고 밝혔다. 이 공지는 올린 지 하루 만에 1200차례 이상 검색되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앞선 22일 여행업계와 한 간담회에서 반간첩법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여행객들이 중국 도착 때 받는 안전 문자메시지에 해당 내용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중국은 지난 4월 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반간첩법을 개정했다.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개정 반간첩법의 내용은 기존 5개 장 40개 조항에서 6개 장 71개 조항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간첩 행위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간첩행위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기밀·정보와 국가 안보·이익에 관한 정보를 빼돌리는 행위’로 넓혔다. ‘국가 안보와 이익’의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중국 당국이 자의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중국 국민 등을 활용해 제3국을 겨냥해 하는 간첩 활동이 중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경우에도 반간첩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예컨대 중국 국민을 활용해 북한과 관련한 정보 활동을 하는 것이 중국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반간첩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간첩 행위에 대한 행정처분도 강화됐다. 간첩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도 행정구류 등 처분을 할 수 있게 했다. 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에 대해 입국을 불허할 수 있도록 하고, 이 법을 위반한 외국인에 대해서는 추방 및 10년 이내 입국 금지 처분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구체적으로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사진 촬영을 할 때 군사시설인 방위산업체, 보안 구역 등이 찍히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시위 현장 주변을 방문하거나 시위대를 직접 촬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또 중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과 관련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 저장하는 행위도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