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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유럽을 휩쓰는 산불…물폭격 준비한다지만 ‘공동안보’ 어렵네

등록 2023-06-25 08:00수정 2023-06-25 19:25

[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지구
유럽 산불과 기후위기

올해 남유럽 전역 ‘산불 리스크’
EU, 항공 소방편대 2배 확충
기후위기로 재난 확대되지만
각국, 기후취약국 지원 인색
지난해 7월26일 프랑스 지냐크 인근에서 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캐나데어 비행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해 7월26일 프랑스 지냐크 인근에서 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캐나데어 비행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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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편대를 2배로 확대한다. 스웨덴 4대, 크로아티아·키프로스·체코·프랑스·독일 2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말 여름마다 점점 거세지며 유럽을 휩쓰는 산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항공 소방편대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스웨덴은 소방용 경비행기 4대, 스페인은 중형 스쿠퍼(소방항공기) 2대, 포르투갈은 경비행기 2대, 체코는 헬리콥터 2대 등을 내놓기로 했다. 산불이 잦은 그리스는 이웃 도움을 많이 받는 만큼 비상시 지원에도 열심이다. 중형 스쿠퍼 2대, 경비행기 2대, 헬리콥터 1대를 제공하기로 했다.

산불은 최근 몇년 새 유럽연합의 공동안보 과제로 부상했다. 2021년엔 남유럽을 비롯해 지중해 주변 거의 전역이 대형 산불에 휩싸였다. 여름철에도 선선하다던 미국과 캐나다 북서부가 이른바 ‘열돔’에 갇혀 기온이 50도에 육박한 해였다. 유럽도 폭염과 산불로 몸살을 앓았고 남유럽 몇몇 나라에는 유럽연합이 금융 지원까지 해줘야 했다. 2022년에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특히 큰 피해를 입었고, 체코·독일·그리스·슬로베니아 등에서도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그래서 지난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의회의 요청에 따라 산불예방 행동계획을 만들었다. 야네스 레나르치치 유럽연합 위기관리 담당 고위대표의 말을 빌리면 “산불은 범유럽적인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2019년 ‘레스큐’(rescEU)라는 산불지원팀을 만들었는데 해마다 출동이 늘고 있다. 레스큐는 지난해 7월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에 소방항공기를 보냈고, 8월에는 체코와 이탈리아, 스웨덴, 폴란드 등을 지원했다. 프랑스, 스웨덴, 그리스, 독일, 루마니아 등에서도 지원 요청이 쇄도했다.

짧은 겨울, 수분 증발, 메마른 토양

유럽연합이 운영하는 코페르니쿠스 비상관리서비스(EMS)는 세계 산불 현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화재위험도를 지표로 만들어 보여준다. 평년과 기온을 비교한 최근 지도에는 올해에도 이상고온을 겪는 북유럽이 새빨갛게 표시돼 있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까지 남유럽 전역은 ‘산불 리스크’를 예측하는 점들로 덮여 있다. 스페인은 올봄부터 심한 물 부족과 더위를 겪었고 프랑스 역시 가뭄 속에 국지적인 산불들이 시작됐다.

스코틀랜드부터 북유럽과 발트해 연안 국가까지, 북유럽에도 산불 경보가 발령됐다. 2018년 대형 산불이 전국을 뒤덮었던 스웨덴 남부와 핀란드 일부 지역에는 5월 이후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짧아지면서, 습한 겨울에 내린 비가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증발하는 양이 많아진 것도 토양을 메마르게 하는 요인이라고 기상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비상관리서비스(EMS)의 화재위험도 지표. 누리집 갈무리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비상관리서비스(EMS)의 화재위험도 지표. 누리집 갈무리

화재가 잦아진 것은 물론이고 ‘메가파이어’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커지다 보니, 특히 유럽처럼 국가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선 국경을 넘나드는 공중 진화가 중요해졌다. 올해 1월 유럽연합 각료회의에서 지난해 산불 진화 과정을 점검해보니 소방항공기가 부족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각국으로부터 소방비행기를 갹출하기로 한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공중 소방작전은 하늘에서 물을 퍼붓는다 해서 ‘물폭격’(waterbomb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항공기와 헬리콥터로 물을 뿌리는 것은 기본이고, 거품이나 젤 혹은 분말 형태의 방재용 화학물질이나 인산암모늄 같은 발화 지연제를 살포하기도 한다. ‘스모크 점퍼’ 혹은 ‘래펠러’라 불리는 소방대원들이 화재 현장에 공수부대원처럼 낙하해 작전을 수행할 때도 있다.

‘공중 살수’라는 개념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부터 1920년대 후반에 나왔지만 항공기에 물을 채워 소방에 실제로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다. 미국 공군이 말 그대로 ‘물을 채운 폭탄’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지만 실패했고,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썼던 폭격기를 개조해 물탱크를 만들어 물을 뿌리는 것이 공중 소방의 대세가 됐다고 한다. 나중에는 아예 소방을 목적으로 한 항공기들이 만들어졌다. 흔히 에어탱커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그 효시는 캐나데어가 1960년대 후반 선보인 CL-215였다. 그 후속편인 CL-415는 모두 합쳐 210대밖에 생산되지 않았지만 소방비행기의 대표 모델이 됐다.

3천ℓ 정도를 뿌릴 수 있는 분무식 작은 항공기에서, 호수나 저수지에서 물을 퍼올려 뿌리는 미국의 에어트랙터 AT-802와 옛 소련의 안토노프 An-2 복엽기까지 다양한 화재 진압용 항공기들이 있다. 가장 큰 것은 ‘글로벌 슈퍼탱커’라는 별명이 붙은 보잉747이다. 2009년 처음 선보였는데 무려 7만4200ℓ의 물을 실을 수 있다.

슬로베니아·프랑스 엇갈린 희비

슬로베니아는 지난달 미국 에어트랙터 유럽지사로부터 AT-802를 인도받았다. 고전적인 세발자전거형 랜딩기어가 장착된 비행기가 스페인 비베르 공항을 떠나 프랑스 코르시카를 거쳐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의 공항에 착륙했다. 슬로베니아가 처음 갖게 된 소방비행기다. 이달 중순 1대를 더 들였고, 내년 2월에 2대를 더 받을 예정이다. <에어리얼파이어 매거진> 보도를 보면, 슬로베니아는 “4대의 강력한 소방편대를 완성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슬로베니아는 지난해 7월 카르스트 지역이 대형 화재로 초토화된 뒤 소방비행기 구입을 결정했다. 비용은 유럽 통합정책기금에서 85%를 조달했다.

반면에 프랑스는 캐나데어의 야심 찬 ‘차세대 물폭탄’ DHC-515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예약했는데도 인도가 늦어져 실망한 분위기다. <에이피>(AP) 통신은 내후년으로 약속됐던 인도 기한이 더 늦어져 2027년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보도했다. 바다나 호수에서 6t 이상의 물을 퍼서 불타는 숲에 뿌릴 수 있는 수륙 양용 항공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7년 퇴임 때까지 캐나데어의 낡은 기종 12대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고 4대를 추가로 들이겠다고 했는데 공약이 위태로워졌다. 지난해 엄청난 화재를 겪은데다 올봄 가뭄까지 겪은 프랑스는 산불 비상이 걸린 처지다. 지난 20일에는 하원이 만장일치로 ‘숲지대 금연 강화’ 법안까지 내놨다.

2015년 채택된 유엔 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은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기온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올라가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후 기후재난 취약국들과 환경단체 주장을 받아들여 1.5도 이내로 맞추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그런데 유엔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19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유럽 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 평균보다 2.3도 높았다.

하늘에서 물폭탄을 떨어뜨린다고 산불을 막을 수 있을까. 당장은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기후변화다. 유럽은 기후 대응을 선도한다면서도 여전히 기후취약국들을 돕는 데에는 인색하다. 자기네 지역 안에서 자연보호구역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놓고도 회원국들끼리 싸우는 중이다. 2022년 유럽에서 산불에 탄 면적의 35%가 자연보호구역에 포함된 곳들이었는데도 말이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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