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조합 형태로 만든 ‘도르마겐시의 이웃과 함께하는 주택’(나보도)은 발코니가 이어져 있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나보도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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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가 늙어가고 있다. 이들은 아마도 앞세대와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노년이 됐을 때 돌봐줄 가족이 없는 사람이 대다수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처지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인돌보미는 갈수록 구하기 어렵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3분의 1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됐다. 이 주제에 관해 사회학·심리학·노인학 그리고 정치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본다.
율리아 코흐 Julia Koch <슈피겔> 기자
요하네스 퇴네센(65)은 50대 중반부터 ’늙어서 절대로 이렇게 살지는 않겠다’는 확고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큰 집에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고 아이들은 그저 의무감에 찾아올 뿐이고 그러다가 언젠가 기력이 완전히 없어지면 양로원으로 가는 일은 피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심리학자이자 기업컨설턴트인 그는 약 10년 전, 행복한 노년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조합을 결성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르마겐시에 멀티세대(multi-generation) 주택을 건설해 2018년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는 지금 반려자 에다 슈타이거(59, 세무사)와 함께 ‘나보도’(NaWoDo) 단지 지상층의 7호 아파트, 개방식으로 지어진 부엌의 식탁에 앉아 있다. 나보도는 ‘도르마겐시의 이웃과 함께하는 주택’(
Nachbarschaftliches
Wohnen
Dormagen)의 머리글자를 딴 프로젝트다.
퇴네센은 그간의 경과를 설명하면서 늙으면 친구들과 이웃해 살겠다고 늘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프로젝트가 처음 희망했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눈 감은 채 간병인 대참사 향하는 중
여러 세대가 자유롭게 함께 모여 사는 이 단지엔 큰 정원이 있고 아이들도 많이 산다. 이런 환경을 보는 퇴네센은 기쁘기만 하다. 방학이 시작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단지 사이로 뛰어다니면서 갓 받아온 성적표를 이웃 어른들에게 보여준다. 그는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역할을 살짝 해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조합 형태로 만든 ‘도르마겐시의 이웃과 함께하는 주택’(나보도) 단지는 여러 세대가 어울려 산다. 나보도 누리집
주소가 라토우르스가르텐(Latoursgarten) 1번지인 단지에는 총 23채의 가구가 있고 현재 모두 입주했다. 주민 나이는 한 살에서 90살 직전까지 다양하다. 신축 건물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알록달록한 우편함들, 집 벽에 기대 놓은 아이들 자전거, 진흙으로 빚은 꽃 화분이 눈길을 끈다. 집을 빙 둘러싼 발코니는 가구별로 분리하지 않고 모두 서로 이어져 있어 주민들이 서로 쉽게 오갈 수 있다. 입주 초기에는 나보도와 가까운 동네 사람들이 “어떤 종교 집단인가요?”라고 묻기도 했다는 일화를 퇴네센은 들려줬다.
퇴네센이 그가 속한 세대의 대다수 사람과 구별되는 점은 단지 거주 방식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노후 문제를 심사숙고해왔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는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말에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들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라는 태도로 인생의 황혼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대 중 절반 이상이 자가주택이나 아파트에 거주한다. 3분의 1, 숫자로는 약 600만 명이 혼자 산다.
언젠가 이들 인구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든가 양로원에 입주하면, 이들을 돌볼 전문 인력의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요양 인력의 도움에 의존하는 노인 수가 2035년까지 4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독일경제연구소의 통계가 있다. 이는 최대 15만 명의 노인 돌봄 간호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베이비붐 세대는 말하자면 “눈을 감은 채 간병인 대참사를 향해” 돌진하는 셈이라고,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립대학의 독일인 사회학자 토마스 드루이엔과 그의 동료들은 ‘간병학 연구서 22’에 경고한 바 있다. 이 연구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54~68살 독일인 1063명 중 약 80%가 훗날 일상생활에서 남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아무런 계획도 세워 놓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태도는 이 세대의 삶의 경험과 서로 관련이 있다. 당시 이 연구를 소개했던 신문 기사는 “베이비붐 세대는 역사적으로 혜택받은 조건에서 태어나 선택지와 다양성이 풍부한 생을 경험했다”며 “이 세대가 간병인 의존이나 궁핍 같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떨어질 경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묻고 있다.
간병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베이비붐 세대는 그들의 부모 세대가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사회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존의 전통 가족은 의미가 퇴색했다. 수많은 결혼이 이혼으로 끝나고 자녀가 있어도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져 삶을 영위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독일 노후 문제 연구 센터’에서 일하는 심리학자 올리버 훅스홀트는 이 사회 변화를 숫자로 정리했다. 1996년에 성장한 자녀 중 약 38%가 부모와 이웃하거나 같은 도시에 살았다. 2014년에는 약 26% 줄었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가 커서 부모의 집 가까이에 거주하는 확률은 적어진다.
그렇다고 이 부모들이 이전 세대 부모보다 더 많이 외로워한다는 말은 아니다. 훅스홀트는 가족 간의 연대감이 거주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약해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더구나 요즘은 서로 직접 만나지 못해도 스마트폰으로 가족 챗 그룹을 만들어 부족함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지 않은가.
또한 요즘은 정년퇴직하는 사람들이 이전 세대 은퇴자들보다 몸이 훨씬 건강한 경우도 많다. 평균수명도 늘었다. 관습적인 가족의 연대 대신, 친구와 지인들이 그 자리를 메꾸는 변화도 생겼다. 이는 본인이 선택한 관계이기에 가족이나 친척보다 오히려 더 질이 높은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독일 카셀 대학의 사회학자 야노슈 쇼빈은 말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친척 아니고 친구
훅스홀트도
“설문조사에서 친척이 아니라 친구들을 가장 가깝고 중요한 인물로 언급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며 이 의견에 동의했다. 이는 좋은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는 이들이 노후에 더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증명했다.
이전 같으면 노인의 친척들이 해냈을 지원 활동이 인적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자발적 활동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생필품을 사고 집 안 청소를 해주는가 하면, 서로 말 상대가 돼주기도 한다. 훅스홀트와 쇼빈 같은 연구자들은 여러 조사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렇지만 고전적 개념의 가족이라는 의미가 사라져 가면서 노년에 외로움을 겪을 가능성이 함께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연방 정부의 가족부 장관 리자 파우스는 현재 ‘고독 대처 전략’을 개발 중이다. 녹색당 소속인 이 여성 장관은 “많은 국민이 외로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배우자가 사망한 노인, 친구의 수가 점점 적어져 가는 노인, 혼자서는 집을 떠나 외출할 수 없는 노인들이 흔히 이 외로운 인구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국제노인의 날(10월1일)을 맞아 벨라루스 민스크의 한 공원에서 노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면 노후에 더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이 학술적으로 입증됐다. REUTERS
자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활동이 줄면 친구들의 범위도 함께 축소된다. 노후 연구가 훅스홀트는 “상황이 아주 심각해졌을 때, 이를테면 누군가 아주 노쇠했거나 치매에 걸린 경우 친구들의 지원으로 과연 어디까지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 우리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설
령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현재 간병 인력 부족이라는 비상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또래와 친구 관계를 맺고, 이는 다시 말해 친구들도 같은 시간에 함께 늙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친구들의 도움이 간병 인력 부족에 궁극적 답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잠재적으로 도움을 줄 사람이 이웃집에 산다면 상황을 해결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 독일 연방 가족부는 2020년 말에 ‘익숙한 형태로 살기’라는 본보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함께 사는 거주 형태”를 실현하는 게 목표다. 멀티세대 거주를 도모하는 자발적 아이디어를 후원하는데, 현재 카셀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러한 개념의 주택단지가 건설 중이다.
훅스홀트는 “노인들이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다른 사람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아네 슈베데스키(62)와 하랄트 슈베데스키(63)는 그래서 위헨에서 살다가 네 자녀가 모두 성인이 되자 이곳 도르마겐으로 이사했다. 두 사람은 반려견과 함께 14호 아파트에 산다. 크리스티아네는 “이렇게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건 힘들 때가 많다. 여기 거주한다는 게 보들보들 편안한 클럽 생활은 아니다”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얼마 전 밤 기차를 타러 갔다가 열차 운행 중지로 쾰른중앙역에 덜렁 남겨진 적이 있었다. 한밤중에 나보도 채팅 그룹에 연락하자 이웃 사람이 당장 차를 갖고 달려와 크게 도움을 받았다.
요양원이나 양로원은 나이 들어 가장 피하고 싶은 곳 중 하나다. 프랑스 성 조아킴에 있는 한 양로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인. REUTERS
이웃끼리 서로 돕는다는 건 나보도 공동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 서로 간병을 해준다는 조항도 없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아주 많은 주민을 위해서 이웃들이 장보기를 대신해준다. 장보기 목록에는 굼미베르헨(Gummibärchen, 곰모양의 쫄깃쫄깃하고 달콤한 젤리)도 들어 있는데, 이웃집 아이들이 서로 연결된 발코니로 나와 현관문을 두드리면 90살 가까운 이 노인이 젤리사탕을 나눠 주곤 한다. 다만 ‘한 아이에게 하루 꼭 한 개씩’이라는 규칙을 지키면서 말이다.
4호 아파트에는 크리스타 그라이펜베르크(61)가 산다. 그녀는 나보도 조합의 창립회원이다. 병을 앓아 전기휠체어에 앉아 생활한다. 그녀는 개인 비서를 채용해 도움을 받으며 일상생활을 한다. 그녀는 “이웃들은 나를 보면서 ‘아하 여기서는 신체 장애가 있는 사람도 무난하게 잘 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라이펜베르크는 아파트가 비면 지원자 중에서 새 입주자를 선정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그녀는 또 나보도와 비슷한 공동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상담해 계획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도르마겐시의 녹색당 당원들도 이미 여기로 견학왔다.
“70살 돼서 입주하는 건 너무 늦다”
그라이펜베르크는 “여기로 온 건 나에게는 복권 여섯 자리가 당첨된 것과 다름없다“고 회상한다. 여러 가족이 조화롭게 공동체를 이루는 다른 사례도 있지만 현재 자신에게는 “나보도 공동체가 가장 잘 맞는 거주 형태”라고 그녀는 단언했다.
노후 연구가 쇼빈도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이러한 주거 형태를 가장 적절한 미래형 모델로 꼽는다. 앞으로의 노년층은 지금과 다른 새로운 사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요양원에 있는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거나 직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라면서, 반면 그후 세대는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높은 요구 기준을 갖고 공동체로 들어온다고 강조했다.
다만, 쇼빈은 나보도 공동체가 아마도 특정 고객층, 즉 자발적으로 주택 단지 계획을 세우고 전력을 기울여 건축을 할 사람들에게만 해결책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기가 노쇠했음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때 적당한 주거 공동체를 찾는 건 이미 늦은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형태의 거주지에는 일찌감치 입주해 적응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요하네스 퇴네센(65)은 일찍부터 노후문제에 고민하며 나보도 건설을 주도했다. 나보도 누리집
코르넬리아 두메(64)와 귄터 두메(73)도 같은 의견이다. 귄터는 “70살이 돼서 입주하는 건 너무 늦다”면서 “그때엔 공동생활에 적극 참여할 가능성이 훨씬 적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코르넬리아도 “처음 여기 입주해 맡아서 했던 과제 몇 가지를 지금은 젊은 세대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다”고 말을 거들었다.
이 부부의 13호 아파트는 거의 모든 벽을 장미빛으로 칠하고 위에 니스를 발랐다. 소파는 새빨간 색이다. 벽에 색을 칠하기 전 이웃과 상의해 허락받아야 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이웃이 힘들여 모든 벽면을 다시 원상태로 하얗게 칠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메 부부에게 허락을 받는 과정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나보도 주민은 어쨌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철저히 신봉하는 사람들이어야 하니 말이다. 새 입주자 선정, 정원에 피자 화덕을 설치하는 문제, 쓰레기 수거장에 지붕을 설치하는 일 등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사안 하나하나에 각 실행팀이 조직되고, 마지막에는 현 입주자 전원의 의견 수렴을 위해 회의를 열어야 한다.
코르넬리아와 귄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텐에서 각자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했다. 부부는 여기 오기 전에도 오랫 동안 다른 가족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자녀들은 이웃간에 문을 열어 놓고 사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큰 주택에 “노인들만 덩그라니” 남는 상황이 되자 부부는 이곳 도르마겐으로 이사왔다.
요양시설로 강제로 보내지지 않는 삶
이 공동체도 언젠가 한계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이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코르넬리아는
“여기 사는 사람 중 누군가가 치매에 걸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자기와 남편에게 나보도는 최상의 주거 형태이지만 상황이 심각해지면 마지막 단계는 결국 요양원이 될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두 사람 모두 여기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소파 침대에 함께 나란히 누워 잠이 든다는 건 현실성 없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기 집에서 살다 임종을 맞는 것, 일상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쇠약해져도 익숙했던 환경에서 분리돼 요양시설로 강제로 보내지지 않는 것,
이런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은 여기 사는 모든 입주자의 소망이기도 하다.
ⓒ Der Spiegel 2023년 제14호
In alter Freundschaft
번역 장현숙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