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리라 환율이 폭등한 7일(현지시각) 이스탄불의 환전소 앞에 달러와 유로 대비 리라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튀르키예(터키)가 자국 통화인 리라의 가치 유지를 위한 개입을 중단하면서 리라의 가치가 7일(현지시각) 한 때 8% 넘게 폭락했다.
미국 경제 매체 <마켓워치> 등의 자료를 보면 외환 시장에서 이날 리라의 환율은 한때 달러당 23.3935리라로 전날보다 8.4% 상승했다가 그 이후 23.3리라 안팎에서 거래됐다. <로이터> 통신은 외환 시장에서 리라 투매 현상이 벌어졌다며 이는 2021년 11~12월 환율이 10리라에서 16리라까지 상승할 때 이후 가장 심한 투매였다고 전했다. 외환 거래자들은 이날의 리라 환율 폭등이 튀르키예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 중단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은행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나라 국영 은행들이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 현지 은행 관계자는 이런 움직임을 ‘의도적인 통화 가치 절하’로 묘사했다.
지난달 28일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3일 새 임기를 시작하면서 정통 경제통인 메흐메트 심셰크를 새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2009~2015년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심셰크의 재기용은 튀르키예 정부가 그동안 유지하던 비정통적인 경제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심셰크 장관은 7일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신뢰할 만한 프로그램을 새로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난 2021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펴온 완화적 통화 정책을 계속 고집하면서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가 금리를 인상하는 와중에도 금리를 계속 내렸다. 금리 인상은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5차례 이어졌고, 이 여파로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연 85%까지 치솟았다.
튀르키예 현지 금융 중개업체의 수석 경제학자 엔베르 에르칸은 “대선 전까지는 대안적인 금융 조처로 환율 변동이 억제되어 왔다”며 “이 측면에서는 더 자유로운 대응이 이뤄지고, 리라 환율이 실제 가치에 더 가까워질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튀르키예 정부는 그동안 자국 통화 중심의 경제 구축을 내세우면서 기업들과 개인들의 외화 보유를 억제해왔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조만간 긴급 회의를 소집해 금리 인상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독일계 은행 코메르츠방크의 외환 부문 책임자 울리히 로이히트만은 “긴급 금리 인상 가능성이 아주 크며 이는 단기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 등 다른 금융 시장 지표들은 투자자들이 튀르키예 정부의 정책 전환에 안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다. 튀르키예 증시의 ‘비스트 100’ 지수는 이날 3.2% 상승하는 등 일주일 사이에 9%가량 올랐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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