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현지시각) 압사 사고가 발생한 파키스탄 카라치의 구호품 배급소 앞에 주인 잃은 신발들이 쌓여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경제난에 시달리는 파키스탄에서 사람들이 구호품을 서로 받겠다고 몰려들었다가 압사하는 사건이 속출해 누적 사망자가 2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 대다수는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1일(현지시각) 파키스탄 매체에 따르면 전날 남부 카라치의 산업·무역지구에 한 기업이 설치한 구호품 배급소에 인파가 밀려들어 12명이 깔려 숨졌다. 앞서 지난달 말에도 곳곳의 무료 밀가루 배급소에서 큰 혼란이 빚어져 북서부 지역(8명)과 동부 펀자브 지역(3명)에서 11명이 압사했다. 파키스탄 정부와 기업 등이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을 맞아 벌인 이번 구호 활동이 오히려 곳곳에서 비극으로 이어진 셈이다.
카라치에서는 좁은 배급소에 600∼700명이 갑자기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는 질서 유지 활동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는 덮개가 없는 배수구에 빠지기도 했다. 경찰은 “사망자 대부분은 여성”이라며 “여러 여성이 열기에 혼절했고 압사당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관리 소홀 혐의로 공장 직원 3명을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파키스탄 경제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인해 대외 부채에 시달리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정치 불안, 대홍수 등 악재가 겹치면서 붕괴 위기에 빠졌다. 물가는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연속 20% 넘게 올랐고 곳곳에서 단전이 지속되면서 주민 삶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파키스탄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중단된 구제금융 프로그램 재개 협상을 벌이며 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파키스탄은 2019년 국제통화기금과 구제금융 지원에 합의했지만, 구조조정 등 정책 이견으로 전체 지원금 약 65억 달러(약 8조4천800억원) 가운데 절반가량만 받은 상태다.
연합뉴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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