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의 모습. 헤이그/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이란 기업의 자산을 동결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며 보상해야 한다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란 중앙은행 자금을 동결한 것에 대해선 자신들에게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과 이란은 모두 이번 판결이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30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이 일부 이란 기업의 자산을 불법적으로 동결해 피해를 줬다며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재판부는 이날 내놓은 67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이란과 이란인의 자산을 동결하는 미국의 몇몇 움직임이 양국이 1955년 8월 맺은 우호·경제관계·영사관에 대한 조약을 위반했다”며 “보상을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판결이 나온 뒤 이란 외교부는 트위터를 통해 “이란의 정의와 미 정부의 위법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동결된 이란 중앙은행의 자금(17억5000만달러)에 대해선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 논란이 시작된 것은 무려 40년 전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레바논에서 발생한 베이루트 해병대 막사 폭발사고로 미군 희생자가 발생했다. 미 법원은 2003년 이 사고의 책임이 이란에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미국 내 있는 이란 중앙은행과 이란 기업의 자산을 동결해 유족들에 대한 보상금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를 둘러싼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미 대법원은 2016년 4월 미국에 동결된 이란 중앙은행 자금과 이란 기업 자산을 사고 희생자 유족들을 위한 보상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최종 판단을 내놨다.
그러자 이란은 두 달 뒤인 2016년 6월 이 결정이 1955년 우호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냈다. 이후 7년 가까운 법적 검토 끝에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날 미국이 이란 기업 자산을 동결한 것에는 이란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란 중앙은행 자산을 동결한 것에 대해선 사실상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이란 기업에 대한 보상 역시 금액을 판단하지 않고, 양국이 협상하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미국과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80년 단교했다. 양국 간 우호조약이 파기된 것은 2018년이다.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 베단트 파텔은 일부 판결에는 실망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한다며 “오늘 결정은 이란에 더 큰 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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