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낭독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5일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5% 안팎’은 목표치로는 역대 최저 수준이고, 시장 예상치보다도 낮다. 중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미국과의 전략 경쟁 심화 및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 불안 상황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리커창 국무원 총리는 약 50분 동안 지난해 경제 상황과 올해 목표 등이 담긴 정부 업무 보고를 낭독했다. 리 총리는 “지난해 중국 경제에는 코로나19 등 예상을 뛰어넘는 대내외적 요인이 작용했다”며 “우리는 큰 어려움과 도전을 극복하고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경제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리 총리의 자화자찬과 달리 중국은 지난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3.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내걸었던 목표치 ‘5.5% 안팎’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낮은 성장률로 인한 기저 효과 등을 고려해, 올해 중국 정부가 5% 중후반대의 목표를 내걸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목표치는 이보다 낮았다. <로이터> 통신은 ‘5% 안팎’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중 최저 수준이라며, 최근 조사에서 시장은 중국이 최고 6%까지 목표를 설정하리라 예상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2020년 코로나 사태 첫해 2.2%의 역대 최저 성장을 기록한 뒤 이듬해 ‘6% 이상’의 목표를 제시했고, 실제 8.4%의 고성장을 달성한 바 있다.
이번에 제시된 ‘5% 안팎’의 목표치에는 올해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중국 정부의 신중한 시각이 담겼다. 중국은 지난해 말 ‘위드 코로나’ 전환 뒤 코로나 충격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 있고, 국내외 경제 상황도 썩 좋지 않다. 세계적인 고물가와 주요국의 통화 긴축 정책 등으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1~2% 초반대로 예상되고,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미국의 견제도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3년간 지속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중국 내 경기 상황도 좋지 않다.
이런 상황 탓에 리 총리는 이날 “국내 소비 회복과 확대를 경제 문제의 최우선 순위에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제가 어려운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을 통제 가능한 소비 활성화로 만회해 보겠다는 것이다. 리 총리는 지난해 3월에도 중국 경제가 “수요 축소와 공급 충격, 장기 (성장) 약세 등 3중 압력에 처해 있다”며 국내 경기 활성화를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중국 정부가 낮은 목표치를 제시한 또 다른 이유는 변화보다 안정 쪽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 총리는 “올해는 경제 안정을 우선시하면서 발전을 추구할 것”이라며 “정책은 일관성과 목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경제 성장을 추구하겠지만, 이를 위해 다른 것을 과감하게 바꾸거나 희생하는 조처 등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3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홍수 같은 부양책’은 지양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고, 중국 재정부장(장관)도 어떠한 재정 지출 확대도 온건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향후 5년의 시진핑 3기 체제가 새로 출범하면서 당과 정부의 인력과 조직 등이 대규모로 물갈이되는데, 이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기존 정책 방향을 상당 부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재정부는 이날 전인대에서 올해 국방예산을 지난해보다 7.2% 증가한 1조5537억 위안(약 293조원)으로 보고했다. 지난해 중국의 전년 대비 국방예산 증가율 7.1%보다 소폭 늘어난 것으로, 2021년부터 3년 연속 증가율이 높아졌다. 중국 국방 예산 증가율은 2019년 7.5%에서 2020년 6.6%로 하락한 뒤 2021년 6.8%, 2022년 7.1%로 계속 상승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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