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4기 1차 연례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왕차오(가운데) 전인대 대변인이 발언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중국이 ‘시진핑 3기’가 공식 출범하는 양회(전인대·정협)를 열면서 미국에는 ‘강대강’ 태도를, 유럽에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4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왕차오 대변인은 전인대 연례회의 개회를 하루 앞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내외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유럽에 상반된 신호를 보냈다. 양회는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로, 4일 국정 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가 개막한 데 이어, 5일 명목상 최고 심의·의결기구로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인대가 개막했다.
왕 대변인은 중국의 최근 대외관계법 입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부 국가는 사적 이익을 위해 국제법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국내법의 역외 적용을 남용하고, 외국 단체와 개인을 마구 탄압한다”며 “중국은 일관되게 이런 행태를 단호히 반대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무리한 탄압과 거친 내정 간섭 행위에 대해 ‘반 외국제재법’ 등을 도입해 반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과 군사·외교적 경쟁을 벌이는 것은 물론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으로부터 고립당하고 있다. 전인대는 지난해 12월 “나라의 주권과 안전, 발전의 이익을 손상하는 행위에는 필요한 반대 조처와 제한을 행한다”는 내용의 대외관계법 초안을 발표했다. 이런 입법 과정과 왕 대변인의 발언 등을 보면, 중국이 미국의 공격에 맞서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날을 세운 왕 대변인은 유럽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그는 대유럽 관계에 대한 질문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 프랑스와 독일, 유럽연합(EU) 등과 잇달아 정상회담을 한 사실을 소개하며 “중국과 유럽 사이에는 근본적인 전략적 불일치나 충돌이 없으며 광범위한 공동 이익과 오랫동안 축적된 협력 기반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유럽은 역사·문화와 이데올로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쪽이 일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정상이며, 건설적인 태도로 소통과 협상을 유지해야 한다”며 “중국은 항상 유럽을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로 간주하고 유럽연합과의 전략적 자주성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고고도 기구와 러시아에 대한 무기지원 등을 놓고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지만, 유럽에 대해서는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러시아 등을 방문하는 등 협력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시진핑 3기’ 출범을 맞아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유럽까지 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양회 이후 올 상반기 중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유럽연합(EU) 수뇌부 인사 등 유럽 요인들을 중국으로 초청해 만날 예정이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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