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부 하르키우 카멘카(카미얀카)의 한 마을에 있는 주택들이 포격으로 파괴돼 있다. 카멘카/AFP 연합뉴스
[코즈모폴리턴] 신기섭 |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전쟁에 휘말린 모두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낼지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면서 너무나 큰 희생과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전투가 가장 치열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군인들이 말 그대로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3월로 접어들면서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곳곳이 진창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도로가 강으로 변하고, 들판이 습지로 바뀌고 있다. 최전선에 배치된 우크라이나군 포병부대 지휘관 미콜라(59)는 “두쪽 모두 현재 위치를 지키고 있다. 보시다시피, 봄은 곧 진흙을 뜻한다. 전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 전쟁의 전반적인 상황을 상징하는 것처럼 들린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체 지역을 장악하는 데 필수적인 요충지인 도네츠크주 중북부 도시 바흐무트 점령에 모든 걸 쏟아붓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을 쉽게 꺾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해 10월처럼 우크라이나 곳곳에 무차별적인 공습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무기가 부족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군을 자국 땅에서 몰아낼 만큼 강력한 반격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앞으로 몇달 사이 동부전선의 상황을 결정하게 될 또 다른 요충지인 하르키우주 남부 쿠피얀스크 지역 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무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92연대 한 보병은 “러시아군은 우리 쪽으로 40발을 쏠 수 있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조준해) 목표에 2발을 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무기지원 약속도 빠르게 이행되지 않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는 독일의 동의로 유럽 각국이 레오파르트2 전차를 지원할 수 있게 된 지 한달이 다 돼 가지만, 무기고에 보관하던 전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자국군 전력 약화를 우려하는 군부의 반발 등으로 실제 전차 지원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을 끝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인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집을 두번이나 폭격당했다는 쿠피얀스크 지역 주민 올렉산드르 루잔은 “우리는 이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우리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냐”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이보다 더 잘 대변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직접 지원 부담도 만만치 않다. 독일의 ‘킬 세계경제연구소’(IFW)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달 15일까지 세계 40여개 국가가 약속한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는 1385억유로(약 193조8천억원)에 이른다. 이 중 45%(622억유로)가 군사지원이고, 인도주의적 지원은 8.7%(121억유로)다. 나머지 642억유로는 재정지원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지원 규모, 특히 군사지원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모두 패자가 되는 전쟁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달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평화를 위한 반란’으로 이름 붙여진 대규모 반전 시위를 벌였던 이들은 온라인 서명운동에 나서며 “전쟁을 끝내려면 협상밖에 없다.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당장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일상 회복을 도울 ‘불편한 최선책’이 아닐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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