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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이란 여학교’ 유독가스 테러…정부, 히잡시위 보복 위해 방관?

등록 2023-03-01 22:34수정 2023-03-02 09:16

석달 전부터 잇따라…BBC “피해 700여명”
사망자도 나와…정부 늑장 수사에 은폐 의혹
이란인권센터 누리집 화면 갈무리
이란인권센터 누리집 화면 갈무리

‘히잡 반대’ 시위가 장기화되고 있는 이란에서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유독가스 테러 범죄가 3개월 전부터 잇따르고 있다는 고발이 나왔다. 정부가 늑장 수사에 나서는 사이 피해자가 수백명으로 늘고 사망자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센터(CHRI)는 누리집에 성명을 내어 “여학교 유독가스 테러로 1명이 숨지고 400명이 중독됐다”고 밝혔다. 단체는 이 테러가 수도 테헤란과 종교 도시 쿰 등 7개 도시에서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사망자는 11살 파테메 레자이이며 쿰의 한 학교에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인권센터는 저널리스트들과 인권단체들이 이 사실을 알렸지만, 당국이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성명에서 “이란에서 ‘여성·삶·자유’ 운동(히잡 반대 시위)이 일어난 지 5개월 만에 여학생들에 대한 테러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이 범죄 행위가 이란 정부와 공모된 것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영국 방송 <비비시>(BBC)도 이란에서 지난 11월부터 약 700명의 여학생이 수십곳 학교에서 의문의 유독가스를 흡입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상당수가 호흡기 질환, 메스꺼움, 어지럼증, 피로 등을 겪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누가 이런 테러 범죄를 벌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주 이란 검찰총장은 첫 사건이 접수된 지 3개월 만에 수사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유네스 파나히 이란 보건차관은 앞선 26일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이번 공격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일부 사람들이 여학교를 폐쇄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최초 사건은 지난해 11월30일 쿰의 누르 기술학교에서 학생 18명이 병원으로 이송되며 발생됐다. 이후 인근 지역 10개 이상의 여학교에서 같은 범죄가 이어졌다. 지난주엔 이란 서부 도시 보루제르드의 4개 학교에서 최소 194명의 여학생이, 28일 테헤란 인근 파르디스의 여학교에서 37명이 같은 피해를 입었다. 피해 학생들은 학교에서 상한 생선 냄새와 비슷한 시큼하고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고 호소했다.

독가스에 노출된 뒤 병원으로 이송된 학생들. 이란계 미국 인권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 트위터 갈무리
독가스에 노출된 뒤 병원으로 이송된 학생들. 이란계 미국 인권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 트위터 갈무리

학부모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들은 2월 초 100여명의 피해 사실이 처음 보고된 쿰의 주지사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 피해 학생은 <비비시>에 “관료들은 ‘모두 이상 없다. 우리는 조사를 마쳤다’고 말했지만 아버지가 학교에 물었을 때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일주일 정지되어 조사할 수 없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번 테러가 누구 소행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무장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보코 하람’과 비슷한 이슬람 강경파들의 소행일 것이라 보고 있다. 이란 정부는 높은 여성 고등교육 참여율을 자랑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처럼 여성 교육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히잡 반대 시위에서 여학생들이 적극적 역할을 한 것에 대한 보복성 테러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란인권센터가 이번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테러단체와 정부가 공모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유다. 이들은 여성 교육을 반대하는 극단주의 종교단체의 소행으로 생각된다며 이 단체들이 에브라힘 라이시의 보수 정부 아래서 더욱 번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디 가에미 이란인권센터 집행이사는 “이란에서 여학생을 의도적으로 독살하려는 테러 행위는 무책임한 정부하에서 나타나고 있는 무법적, 폭력적 태도와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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