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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우크라가 이기면, 강대국 마음대로 한다는 오만함 버리게 될 것”

등록 2023-02-22 05:00수정 2023-02-22 14:08

박민희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우크라·러 침공반대 활동가들
‘우크라’ 안드레이 “‘한국전쟁식 휴전’ 동의 못 해”
‘러’ 알렉산드라 “더 나은 러시아 위해 우크라 지지”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러시아인 알렉산드라(왼쪽)와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가 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전쟁 1년을 맞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러시아인 알렉산드라(왼쪽)와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가 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전쟁 1년을 맞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광주 새날학교 교사인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 리트비노프는 너무 충격에 빠져 사흘 동안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고 뉴스만 보았다. 그뒤 폴란드를 오가며 난민이 된 동포들을 돕고, 한국에 우크라이나 상황을 알리며 침공에 반대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러시아인 알렉산드라는 “침공 첫날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집이 러시아군의 폭격에 파괴되는 장면을 보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는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살해당하고 고문과 강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주말마다 반전시위를 하고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년이 흘렀지만, 전쟁이 언제 어떻게 멈출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어두운 상황, 전쟁은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한때 ‘형제’로 여기기도 했던 두 나라 사람들은 이제 반전 운동도 함께하기 힘든 ‘적’이 되어 버렸다. 안드레이와 알렉산드라는 전쟁의 ‘당사자’로서 직접 푸틴의 침공이 왜 범죄인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진실은 무엇인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왜 푸틴이 패배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며 용기를 냈다. 2월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침공반대 운동가가 함께 만났다.

침공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안드레이.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침공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안드레이.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

―지난 1년 동안 침공 반대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한국 단체들이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많이 돕고 있다. 난민촌에서 한국인들의 자원봉사를 보면 눈물이 날 정도다. 한국인들은 보이지 않는 데서 설거지나 식사 준비 등 가장 힘든 일을 하고 있다. 이름을 알리려 하지 않고 묵묵히 도움을 주는 모습이 너무나 빛난다. 한국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하면 90% 기사분들은 ‘돈 내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조용히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대단히 많다. 그런데 때로는 마음이 착잡해질 때도 있다. ‘전쟁 때문에 기름값이 너무 올랐으니 우크라이나가 빨리 양보해서 끝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만약에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북한도 똑같은 논리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 일제 시대에 임시정부나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나. 우크라이나도 지금 마찬가지로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보면 고스란히 한국 역사를 떠올리게 되지 않는가.”

―2014년 우크라이나인들이 친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며 일어난 마이단 시위가 미국의 사주를 받아 일어났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려 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2014년 마이단 시위 당시 우크라이나 시민 다수가 ‘유럽과 함께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 러시아 모델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런 의지가 없었다면, 미국이 개입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시위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은 젤렌스키 한 사람의 바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람들 다수의 바람이었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문제이지, 러시아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은 대통령으로서 여론에 따라 나토 가입을 추진한 것이다. 젤렌스키가 기득권 정치인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하게 상황을 볼 수 있었다고 본다. 젤렌스키가 기성 정치인이었다면, 돈바스 분쟁에서도 끊임없이 말장난을 해가면서 우크라이나 내부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푸틴이 ‘나토의 동진’ ‘우크라이나의 나치’ 등을 침공의 명분으로 들었다.

“푸틴이 수십만 러시아인을 죽음의 전선으로 내몰려면 핑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을 자극하는 ‘나치즘’이란 단어를 동원했고, ‘유럽이 동성애로 러시아를 오염시키려 하니 동성애와 싸우는 거룩한 싸움을 한다, 나토가 동진하니 싸운다’는 가짜 논리를 만들어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생화학무기를 만들었다면서, 우크라이나 닭과 오리들이 러시아를 공격한다는 말도 안되는 가짜 뉴스 영상까지 유포했다.”

―그런 러시아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러시아가 지난 30년 동안 석유를 판 돈으로 국내 러시아인들에 대한 세뇌와 프로파간다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왔다. 국제적으로도 <알티(RT)>라는 국영 언론 등을 통해 미국, 유럽 등에서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가짜뉴스를 퍼뜨려 왔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무기는 러시아의 거짓말이다. 러시아는 미사일을 쏘고도 우리가 한 짓이 아니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너네들을 죽인 거라고 거짓말한다. 부차에서 학살을 저지르고도 거기서 사람들이 죽은 게 아니라 배우들이 연기를 한 거라고 한다. 당신이 거기서 학살 당한 사람의 부모라면 어떤 마음이 들겠나. 사람을 학살하고 또 조롱하는 것이다. 미사일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우크라이나에 극우 아조프 민병대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우크라이나에 강한 민족주의가 있다. 또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크름반도를 점령했을 때 우크라이나 군대는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군대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래서 싸울 사람이 없으니까 소수의 강경 민족주의자들이 앞장섰던 것이다. 이제는 우크라이나군이 제대로 정비되었고 그런 민병대는 해산하고 일반 군대에 편입되었다.”

―우크라이나에 친러, 반러 세력이 있고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친러 입장이지 않나.

“아니다. 그것도 푸틴이 만들어낸 거짓 중 하나다. 나도 모국어는 러시아어이지만 러시아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2014년 이전에는 우크라이나 내부에 친러 정치 세력도 있었다. 그때까지는 러시아의 진짜 얼굴을 우리가 제대로 몰랐다. 나도 그때까지는 러시아가 우리를 공격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러시아가 형제 국가라고 믿기도 했다. 2014년 크름반도 점령과 러시아의 돈바스 공격, 그리고 특히 이번 침공을 거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진짜 모습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러시아에 기대를 가졌던 사람은 이제 없어졌다. 친러 세력은 이미 러시아로 떠났다. 나는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땅이 어찌되든, 정치적으로 어떻게 끝나든, 러시아는 이미 모든 우크라이나인을 잃어버렸다. 과거에 푸시킨 시와 차이콥스키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부끄러워서 읽지도, 듣지도 못한다. 푸틴은 러시아 문화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영원히 적대적이 될 것이라는 뜻인가.

“적어도 100년 이상 ‘형제 국가’란 얘기도 꺼낼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형제가 와서 아이들까지 죽이는가. 최근에 우크라이나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비둘기가 날아와 창문에 부딪혀 죽으면서 피묻은 흔적이 남았다. 군인인 그 집 주인이 돈바스 전쟁에서 돌아왔는데 아무리 창문의 피묻은 흔적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푸틴이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남긴 상처는 영원히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다. 폴란드 난민촌에서 한국 방송사의 인터뷰를 도운 적이 있다. 기자가 ‘우리가 여러분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하자, 우크라이나 여성이 갑자기 통곡했다. ‘내 남편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여기 왔다. 미사일로 딸의 다리가 절단되었다. 남편을 살릴 수 있나, 딸의 다리를 다시 만들어줄 수 있나’라고 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아이와 여성을 비롯한 민간인, 군인들이 죽고 이런 상처를 입었다. 만약 푸틴이 머리를 숙이고 사죄를 해도, 푸틴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푸틴이 저지른 짓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이미 전쟁이 1년이 넘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어서 휴전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이 ‘젤렌스키가 왜 푸틴과 화해 안 하냐’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너무 속상하다. 만약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제 그만 싸우고, 크름반도도 포기하고, 러시아와 합의하자’고 해도, 우크라이나 민족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러시아는 ‘젤렌스키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주장하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는 것은 크름반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1991년 독립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99%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이기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 혼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한국도 민족주의가 강한 것처럼 우크라이나에서도 민족이 정말 중요하다. 가족과 친척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이 터질 정도로 큰 마음이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민들의 그런 마음을 배신할 수 없다. 몇달 전에 우크라이나 의회는 푸틴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있는 한 대화하지 않는다는 법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이런 자결권을 충분히 존중해야 하지만, 국제정치는 강대국들 간의 냉혹한 거래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미국이 더이상 무기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판단하게 될 때, 한국전쟁처럼 영토가 분단된 채 휴전협정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만약 여러분의 아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구해야 한다면, 분명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우겠죠. 그게 우리 대답이다.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무기가 없으면 맨주먹으로라도 싸우겠다는 각오다. 강대국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나라와 자유, 우리 아이들을 지킬 것이다.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우크라이나인들이 포기하고 항복했다면 국제적 지원도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군은 명분 없이 돈 때문에, 또는 강제로 전선으로 오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람은 자신의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전선으로 가고 있다. 내 형도 지금 군에 자원해 싸우고 있다. 67세인 아버지는 ‘마지막 소명’이라며 의료요원으로 자원해 참전했다가 부상 당해서 치료 받고 계신다.”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는 어떤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만큼 큰 희생과 대가를 치렀으니, 아름다운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전쟁이 끝나면 난민들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평화롭게 살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재건과 발전 경험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되느냐보다 세계 평화의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만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세계 질서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 강대국도 약한 나라를 괴롭히다 얻어맞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승리한다면, 강대국들은 힘으로 남의 나라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게 될 것이다.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쓰지 않을 것이고, 북한도 한국에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게 될 것이다. ”

침공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러시아인 알렉산드라.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침공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러시아인 알렉산드라.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러시아인 알렉산드라

―침공 뒤 지난 1년 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나.

“전쟁에 반대하는 재한 러시아인들의 모임인 ‘보이시스 인 코리아’와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주 모여서 평화, 반전 시위를 하고, 국내 러시아인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 내부의 문제를 한국과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리려는 활동도 하고 있다. 반전활동을 하다 체포된 러시아 정치범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행사, 우크라이나인들의 대피를 돕는 단체를 지원하는 모금 행사도 했다. 재한 러시아인 가운데 솔직히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러시아인으로서 반전 운동을 할 때 위험을 느끼지 않는가.

“모스크바 집에 경찰이 찾아왔다. 엄마랑 여동생이 집에 있었는데 특히 여동생이 너무 놀랐다. 경찰이 다시 오겠다면서 겁을 줬다고 한다. 걱정이 되지만,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정부를 향해, 러시아 시민들을 향해 우리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2021년에 푸틴에 반대하는 정치인 나발니가 체포된 날,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나도 참여했다. 그때 한국에서도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큰 힘을 얻었다. 지금 러시아인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악플과 비난을 받고 힘들 때마다, 당시에 느꼈던 그 연대의 힘을 떠올린다.”

―푸틴이 ‘나토의 동진’과 ‘우크라이나의 나치’ 때문에 특별군사작전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푸틴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침공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내건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푸틴은 언제나 나토, 미국, 유럽을 비난하지만, 실제로 푸틴의 가족들은 유럽에 집을 사고 큰 돈을 쓰며 생활하고 있다. 푸틴의 주장은 이념도 아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주장일 뿐이다. 지금 러시아에는 이념이 없다. 라시즘(러시아 파시즘)만 있다. 교사는 학교에서 침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가 정당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수업을 해서 보고해야 한다. 유치원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침공을 지지하는 표식인 Z를 그린 피켓을 들고 있게 하기도 한다.”

―왜 여전히 많은 러시아인들의 푸틴과 이번 침공을 지지하는가.

“러시아 정부가 모든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몇개 있던 독립언론도 모두 리투아니아 등 다른 나라로 옮겨 유지할 수밖에 없다. 선전과 세뇌가 너무 심각하다. 시위를 하거나 전쟁 또는 평화라는 말만 써도, 길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만 들고 있어도 체포된다. 2만명 이상이 반전시위로 체포되었다. 그런데 푸틴과 전쟁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통계도 믿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또는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을 거부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질문도 교묘하게 조작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우정을 위한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합니까’라고 물으며 지지 응답을 유도한다. 오히려 정확한 여론을 보여준 것은 징집령이 내려졌을 때 러시아 남성들이 보인 반응이다. 몇분 만에 주변국가로 가는 항공권이 매진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일 조금씩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반전 선전물을 만들어 나눠주거나 무기를 운반하는 철도를 망가뜨리는 저항도 있고 징집 사무소에 방화하는 저항도 있다. 얼마 전에도 징집영장을 받은 20살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 ‘다른 사람의 피를 내 손에 묻히지 않은 상태에서 내 조국에서 죽는 걸 택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러시아인들의 반전 시위나 운동이 러시아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있는가.

“러시아에서 시위는 무조건 잘못된 것, 민폐라는 생각이 강하다. 러시아인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도 약하다. ‘우크라이나는 독립적인 국가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선전을 믿는 이들이 많다. 시위를 하면 경찰에 체포되고 탄압을 받기 때문에 침묵하는 이들도 많다. 나를 비롯해서 일부 러시아인들이 침공 반대 운동을 한다고 해서, 러시아인 대다수가 반전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러시아인의 입장을 결코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 러시아의 전범, 군,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침공과 대량 학살을 지원하는 이들을 은폐하고 싶지 않다. 러시아인들은 지금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한편으로 러시아에서 젊은 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외부 소식에 접근하고, 정부가 통제하는 언론이나 프로파간다에 의문을 가지면서, 조금씩 진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 외부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침공에 저항하고 진실을 알리려는 활동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

―푸틴은 대통령을 2번 연임한 뒤 헌법 상 연임 제한 때문에 총리로 잠시 물러나 있다가 2012년에 3번째 임기의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부터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며, 알렉산드르 두긴이 주장하는 반서구, 러시아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푸틴은 무슨 이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무엇이든 이용한다.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민주주의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후에는 서구와 나토에 대한 비판으로 입장을 바꿨다. 2008~2012년 메드베데프가 잠시 푸틴 대신 대통령을 맡고 있는 동안, 러시아인들은 러시아가 좀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미래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메드베데프는 미국과도 우호적 관계로 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2011년 말 푸틴이 다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자, 우리는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다.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때 푸틴은 대통령으로 돌아올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장기집권을 위해 두긴의 범 슬라브주의 파시즘도 이용하고, ‘제국의 부활’ 같은 주장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악의 세력에 맞서서 싸우고 있고 전세계가 러시아를 괴롭히고 있다는 프로파간다를 확산시켜왔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푸틴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푸틴이 집권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정치에 대한 지식도, 인식도 없었고 정부가 가르치는 대로 믿었다. 러시아에서 푸틴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항상 아이돌이나 영웅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준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그가 정말 위험한 사람이고 많은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 (푸틴의 독재에 맞선 정치인) 나발니에 대해 알게 되고, 페미니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이던 2016년에 푸틴 측근의 부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다. 페미니스트 활동도 하고, 나발니가 세운 반부패재단에 기부도 했다.”

―러시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반전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의 가부장제와 가정폭력은 정말 심각하다. 가정폭력을 처벌하는 법도 없다. 남편이 아내를 많이 때리고 갈비뼈를 부러뜨려도 경찰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43분마다 한명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죽고 있다. 푸틴이 유라시아주의를 주장하고, 유럽의 가치나 페미니즘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여성 억압은 더 심해졌다. 몇 년 전에 한 남성이 여성 9명을 강간했다. 푸틴은 ‘이 사람은 능력이 엄청나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이런 상황을 바꾸려는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푸틴의 독재와 침공에도 반대하게 되었다.”

―미국 주도의 제재나 이번 침공으로 러시아 경제가 입은 타격은 별로 없어 보인다.

“러시아 전체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푸틴과 소수의 측근들이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부패와 빈곤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군대, 교육도, 의료도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된 병사들은 국가가 양말과 속옷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얘기하고 있다. 제국주의적 착취 문제도 심하다. 소련 시절에도 소수민족을 ‘형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소수민족들의 목숨을 빼앗고 문화를 지우면서 땅을 넓혔다. 지금도 모스크바의 러시아인들이 아닌 소수민족들을 주로 전쟁터로 끌고가고 있다. 소수민족 지역에서 반전 저항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더이상 러시아랑 함께 가고 싶지 않다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이번 전쟁이 어떻게 끝나고, 러시아에 어떤 미래가 오길 희망하는가.

“푸틴이 계속 대통령으로 있다면, 러시아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푸틴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과 시민단체, 심지어 가정폭력 피해자를 돕는 비정부기구(NGO)까지 ‘외국의 대리인’ 즉 스파이라고 낙인을 찍어 탄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자신들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서도, 세계의 변화를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배신자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오히려 조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그런 미래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쟁을 저지른 이들은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한다. 침공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더 나은 러시아를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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