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수출하는 수송선들이 튀르키예 이스탄불 앞바다에서 보안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흑해를 통해 수출되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송선의 보안 검사 절차가 최근 지연되면서 곡물 수출량이 줄었다. 이 지역 곡물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다시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엔과 튀르키예(터키)의 중재를 통해 우크라이나·러시아 등 4자가 운영하고 있는 흑해 곡물 수출을 위한 ‘공동조정센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량이 지난해 12월 370만t에서 지난 1월 300만t으로 줄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해 8월 초 곡물 수출이 시작된 이후 이날까지 수출된 전체 곡물량은 2141만t이다. 이 가운데 47%는 옥수수, 29%는 밀이다.
곡물 수출량 감소는 합동조정센터가 실시하는 수송선 검사 속도가 늦어진 탓이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설치된 합동조정센터는 흑해를 드나드는 곡물 수송선이 무기를 싣고 있지 않은지 검사한 뒤 통과시키고 있는데, 최근 하루 평균 검사 건수가 6건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난달 하루 5.7건보다 늘어난 것이지만, 통과 수송선이 가장 많았던 지난해 10월의 하루 10.6건에는 크게 못 미친다.
이 때문에 검사를 기다리거나 새로 곡물 수송에 투입되기 위해 대기하는 선박이 현재 152척에 달해 지난달보다 50% 늘었다고 합동조정센터는 밝혔다. 합동조정센터의 우크라이나 대표 루슬란 사하우트디노우는 “수송선 검사 완료까지 걸리는 기간이 지난달보다 일주일 늘어난 28일에 달한다”고 말했다. 날씨가 좋지 못해 검사 작업이 지연되거나 항구의 처리 능력이 부족한 점 등이 검사 속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농업 정보 분석 기업 ‘그로 인텔리전스’의 선임 분석가 윌리엄 오스네이토는 “검사가 계속 늦어지면 한두달 뒤에는 (수출 차질 규모가) 몇백만t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송선 검사가 늦어지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검사 지연 책임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에서 러시아가 곡물 수송을 방해하고 있다며 “러시아쪽 흑해 항구에서는 아무런 차질 없이 곡물이 수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스위스 제네바 주재 러시아 국제기구 대표단의 알렉산드르 프첼랴코프 대변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런 신경전 와중에 러시아쪽은 자국의 비료가 이 합의에 따라 제대로 수출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하고 있다. 세르게이 베르시닌 러시아 외교차관은 최근 현지 방송에 나와 비료 수출과 관련된 가시적인 결과가 없는 한 곡물 수출 합의를 연장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다음달 18일로 끝나는 곡물 수출 합의의 연장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엔 등 4자는 지난해 7월 22일 120일 동안 유효한 합의를 체결한 이후 11월 중순 합의를 4개월 연장한 바 있다.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량 감소는 아프리카 지역에 특히 부담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급등했던 국제 곡물 가격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경우 미국 달러 강세 여파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곡물 가격이 여전히 안정되지 않고 있다고 오스네이토 분석가는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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