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헌법이 유럽연합의 조약에 우선한다는 폴란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2021년 10월 대형 유럽연합 기를 펼친 채 유럽연합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르샤바/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폴란드 헌법이 유럽연합의 조약에 우선한다는 폴란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유럽연합의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폴란드 헌재의 이 결정은 ‘법률 측면에서의 유럽연합 탈퇴’ 성격을 띠는 것이어서 유럽연합이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15일(현지시각) 폴란드 헌재가 유럽연합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폴란드를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집행위원회는 “폴란드 헌재가 지난 2021년 7월과 10월 유럽연합의 조약이 폴란드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유럽연합 법률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폴란드 헌재의 결정은 유럽연합 법률의 자율성, (다른 법률·규정에) 우선하는 지위, 유효성, 보편적 적용이라는 일반 원칙을 위반하고 유럽사법재판소의 결정이 갖는 구속력도 부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폴란드가 2018년 판사 지명 권한이 있는 국가사법평의회의 위원을 하원이 선임하도록 제도를 바꾸자, 유럽사법재판소는 2021년 3월 이 제도가 법치주의를 위반한다며 위원회의 효력 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맞서 폴란드 헌재는 그해 7월 유럽사법재판소의 이 조처가 폴란드 헌법 위반이라고 결정했고, 이어 10월에는 유럽연합의 조약보다 자국 헌법이 우선한다는 결정까지 내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그동안 폴란드 정부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해왔으나 논의에 진전이 없자 결국 법적 대응에 나섰다. 디디에 랭데르스 유럽연합 법무 담당 집행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유럽연합 내 모든 사람은 유럽연합 법률 질서의 기본 원칙과 권리를 똑같이 적용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폴란드 헌재의 결정은 사실상 법률적으로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걸 뜻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지적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비정부기구 ‘민주주의 리포팅 인터내셔널’의 야쿠프 야라체브스키 연구원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제소를 ‘폭탄선언’으로 표현했다. 그는 집행위원회가 너무 늦게 대응에 나섰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지지에 적극 나선 점을 고려해 지금까지 제소를 늦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법률적 통제를 둘러싼 두쪽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유럽연합의 폴란드 지원금 동결도 풀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유럽연합은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한 기금으로 폴란드에 할당된 354억유로(약 48조6천억원)의 집행을 지금까지 미뤄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기금 집행 조건으로 국가사법평의회 등 사법 시스템 개편, 대법원에 설치된 법관 징계위원회 해체 등을 제시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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