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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로힝야족 학살’ 미얀마 군부, 왜 독일 검찰에 고발됐나

등록 2023-01-31 07:12수정 2023-01-31 08:13

독 가장 강력한 보편적 관할권 행사
중대한 국제범죄 국적 불문 처벌
1월8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아체주에 도착한 로힝야족 난민들이 임시보호소를 향해 걷고 있다. 아체/AP 연합뉴스
1월8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아체주에 도착한 로힝야족 난민들이 임시보호소를 향해 걷고 있다. 아체/AP 연합뉴스

미얀마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가 20일(현지시각) 독일 검찰에 2017년 8월 발생한 로힝야족 학살 사건 등의 책임을 물어 미얀마 군부를 고발했다. 이 고발엔 군부의 인권 탄압으로 피해를 본 이들 1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학살에 “책임져야 할 군부 인사들이 벌을 받지 않고 있다”며, 독일 검찰이 이들의 대량 학살,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를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5년여 전 미얀마에선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공포에 빠진 수십만명의 로힝야족은 눈앞의 위험을 피해 방글라데시 등 인근 국가로 몸을 피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여전히 열악한 난민캠프 등에 머물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학살을 주도했던 미얀마 군부는 3년여 뒤인 2021년 2월1일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합법 정부를 무너뜨렸다. 정권을 찬탈한 이들은 이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 고발에 학살로 희생된 로힝야족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민족이 참여하고 있는 이유다. 고발인들의 직업은 활동가·농민·학생·주부 등 다양하다.

영국 <가디언>은 “소장엔 미얀마 군부 대원들이 (로힝야족을) 조직적으로 살해·고문·투옥·성폭행했고, 일부 군부 인사들은 부하의 행동을 알면서도 저지하거나 처벌하려 하지 않았다는 ‘실질적 증거’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독일 연방검찰청은 소장이 접수된 사실은 확인했지만, 수사나 기소 여부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만약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 해도 의미 있는 결론을 내놓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망했다.

독, 시리아 내전 인권범죄자에 무기징역

그런데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 가해자·피해자 모두 미얀마 사람들이고 끔찍한 인권 침해가 일어난 곳도 미얀마인데 이들은 왜 독일 검찰에 고발을 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대량 학살이나 인도에 반하는 중대 범죄에 한해 국제법에서 적용되는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이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관할권은 한 나라의 법원이 특정 사건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고, 보편적 관할권은 말 그대로 관할권을 전세계로 넓혀 모든 국가가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는 보편적 관할권을 “범죄가 발생한 곳이나 가해자·피해자의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국가는 국제적 우려를 받는 특정 범죄의 가해자를 재판에 회부할 이해관계(interest)가 있다는 원칙”으로 정의한다. 유엔에 따르면 전쟁범죄의 정의를 명시했던 1949년의 제네바 협약을 시작으로 여러 조약이 중대한 불법 행위 가해자에 대한 소추 의무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번 고발을 주도한 포티파이 라이츠는 “독일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편적 관할권을 가진 나라”라며 “독일 당국이 미얀마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중대한 국제범죄를 조사하고 기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미얀마 출신 인권활동가로 포티파이 라이츠에서 일하는 니키 다이아몬드도 “만약 독일이 이번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를 시작하면, 당국이 그들을 체포해 기소할 수 있다”며 “유럽연합과 다른 유럽 나라들이 미얀마를 압박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검찰에 미얀마 군부를 고발한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의 대표 매슈 스미스가 1월24일(현지시각) 타이 방콕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독일 검찰에 미얀마 군부를 고발한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의 대표 매슈 스미스가 1월24일(현지시각) 타이 방콕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비정부기구인 ‘트라이얼 인터내셔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해 동안 전세계에서 보편적 관할권이 발동된 예는 전쟁범죄, 집단학살, 성범죄 등 125건의 범죄다. 독일을 포함해 유럽연합 11개국, 영국·스위스·미국·아르헨티나 등 16개국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스웨덴 법원이 보편적 관할권에 따라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 소속 교도관으로 1988년 정치범 처형에 관여한 하미드 누리에게 전쟁범죄와 살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1994년 르완다 대학살에 관한 수사와 재판 등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도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 등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면서도 당시 군부의 로힝야족 핍박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역시 아르헨티나 당국의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

2002년 6월 발효된 국제형법전을 가진 독일은 특히 적극적으로 보편적 관할권을 인정하고 행사해온 나라로 평가받는다. ‘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살인·고문·성폭력 등을 저지른 비밀정보기관 직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체포하고 고문에 가담한 혐의로 정보기관 요원이었던 이야드 가립에게 2021년 2월에 징역 4년6개월, 지난해 1월 정보기관 요직에 있던 안와르 라슬란 전 대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2011∼2012년 사이에 교도소 책임자로 일하면서 이곳에서 발생한 수많은 고문과 살해에 가담한 혐의를 인정받았다. 2014년 이라크에서 발생한 야지디족 학살과 관련한 유죄 판결도 지난 2021년에 독일에서 처음 내려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시리아 유죄 판결이 나온 2021년 3월 “독일 국경 밖에서 발생한 범죄와 관련해, 독일 사법체계에 정의를 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이 2015년 시리아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독일에 입국한 인권침해 생존자들이 대응에 나서며 수사와 재판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매체는 분석했다. 라슬란 전 대령도 독일 베를린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교도소에 잡혀 있던 시리아인이 우연히 그를 알아보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단죄로 이어질 수 있었다. 독일 역시 초반엔 보편적 관할권의 적용에 소극적이었지만, 이후 전쟁범죄를 수사하는 조직에 많은 자원을 투입했고 다양한 판례로 이어졌다고 매체는 전했다.

2022년 1월13일(현지시각) 독일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안와르 라슬란 전 대령(오른쪽). 그는 시리아 내전 당시 교도소 책임자로 일하며 고문과 살해 등에 가담했다. 코블렌츠/AP 연합뉴스
2022년 1월13일(현지시각) 독일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안와르 라슬란 전 대령(오른쪽). 그는 시리아 내전 당시 교도소 책임자로 일하며 고문과 살해 등에 가담했다. 코블렌츠/AP 연합뉴스

물론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인도에 반하는 중대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ICJ)나 국제형사재판소(ICC)를 통할 수도 있다. 다만 국제재판소를 통한 해결이 어렵다면, 보편적 관할권은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독일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시리아 사건도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가 논의됐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무산됐다. 미국 <디플로맷>은 미얀마인들의 군부 고발 소식을 전하며 “인권운동가들이 군부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새로운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얀마 군부의 학살 등 혐의는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에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푸틴은 법정에 설 수 있을까

미얀마 군부의 인권 탄압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사안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뤄진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범죄에 대한 사법 처리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침공 초인 지난해 3~4월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서 집단 처형, 불법 구금, 고문, 학대, 성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와 비교해 사례가 많지 않지만 우크라이나군도 전쟁범죄 혐의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부터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 지도부에게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쟁범죄에 대한 러시아의 배상은 우크라이나가 꾸준히 내거는 종전의 조건이기도 하다. 이번 전쟁 과정에서 불거지는 범죄 혐의에 대해선 특별법정을 세워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이 아니고, 유엔 안보리를 통한 회부 역시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지난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현장조사 인력을 보내는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독일과 리투아니아 등의 검찰이 보편적 관할권을 발동해 러시아의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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