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이 8일(현지시각) 연방 의회, 대통령궁, 대법원 건물을 장악하고 폭동을 벌였다. 의회 건물에 몰려든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브라질리아/AP 연합뉴스
지난해 대선에서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이 8일(현지시각) 연방 의회, 대통령궁, 대법원 건물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는 등 폭동을 일으켰다. 2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1·6 의사당 난입 사건을 그대로 빼닮은 사태가 브라질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로이터> 통신 등은 이날 브라질 국기 색깔과 같은 녹색과 노란색의 옷을 입은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의 연방 의회, 대통령궁 등 주요 공공 건물에 난입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들은 폭동에 참가한 인원을 대략 3천명 수준으로 추산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사진 등을 보면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대법원 건물에 들어가 창문들을 마구 부쉈다. 막대기 등으로 무장한 지지자들이 말을 탄 경찰을 둘러싸고 공격하는 모습도 보였다. <에이피>(AP) 통신은 폭동 참가자들이 보안용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군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개입’이라는 글을 쓴 손팻말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현지 언론 <글로보 뉴스>는 폭도들이 대통령궁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공개했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의회 건물 등에 난입할 당시 주변에는 경찰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소셜미디어에는 경찰 한명이 의회 건물로 몰려드는 군중들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다른 경찰은 자신의 전화기로 군중들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주요 정부 건물에 난입한 지 약 3시간 뒤인 이날 오후 5시30분께 보안군이 대통령궁과 대법원 건물 주변에서 시위대를 진압하고 통제에 성공했지만, 의회 건물은 여전히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점거한 상태였다고 <에이피>는 전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21년 1월6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수도 워싱턴의 의사당에 몰려들어갔던 일을 연상시킨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지난 1일 취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애칭 룰라) 대통령은 이날 상파울루주를 공식 방문한 상태여서 보우소나루 지지자들과 맞닥뜨리지 않았다. 룰라 대통령은 즉각 이달 말까지 수도 브라질리아에 대한 연방 정부의 보안 개입을 선언했다. 그는 수도에 대한 경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점에 불만을 표시하고 이 때문에 “파시스트들과 광신도들”이 아수라장을 만들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룰라 대통령은 폭도 모두를 적발해 처벌할 것도 다짐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30일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1.8%포인트 차이의 근소한 격차로 패배한 뒤 패배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고, 임기 만료 직전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 룰라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그는 이날 지지자들의 폭동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수도 브라질리아가 속한 연방 특별구의 이바네이스 로차 주지사는 보안군을 모두 투입해 시위대 진압에 나섰으며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특별구 보안 총책임자 안데르송 토레스를 파면했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플라비우 지누 법무장관은 전날인 7일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수도 난입 소문이 돌자 연방 보안군 투입을 승인했으며, 이날 사태 직후 “무력으로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이 어리석은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난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브라질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의 더글러스 코네프 대사 대리는 소셜미디어에 쓴 글에서 “우리는 행정·입법·사법부에 대한 공격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이런 행동을 정당화할 핑계거리는 없다”고 지적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룰라, 브라질 국민들과 전적으로 연대한다”며 밝혔고,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민주주의에 대한 이 비겁하고 부도덕한 공격에 직면해, 룰라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