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정부의 질소 규제 강화로 농장 폐쇄 위기에 몰린 농민들이 지난 6월 말 고속도로를 막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올덴잘/EPA 연합뉴스
전세계가 기후 위기와 식량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농업의 미래를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농업이 화석연료에 이은 주요 기후·생태 위기 유발 요인으로 부각되면서 네덜란드에서는 농장 폐쇄라는 극단적인 대책까지 등장하며 정부와 농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뉴질랜드 등에서도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규제에 나서면서 논란이 커지는 중이다. 화학비료 가격 폭등으로 농업 위기를 맞고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지금이야말로 다른 나라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대안 농업’에 나서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업을 둘러싼 갈등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나라는 유럽의 농축산물 수출 강국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달 말 환경 오염과 온난화 유발 물질로 꼽히는 암모니아와 질소산화물 등을 줄이기 위해 농장 3천곳을 사들여 폐쇄하는 방침을 확정하고 연말까지 자발적 폐쇄 신청을 받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신청자가 목표에 미달하면 내년부터 강제 농장 매입에 들어갈 계획이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현재 네덜란드에는 5만1042개 농장이 운영 중이다. 전체 농장의 6%가 문을 닫을 상황에 몰린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가 농장 폐쇄를 들고나온 것은 유럽연합(EU)의 자연보호 규정에 따라 2030년까지 질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전체 축산 농가의 가축 수를 30%까지 줄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네덜란드 농가가 사육하는 소·돼지·닭은 인구(1777만명)의 6배를 넘는 1억1268만마리에 이른다. 네덜란드는 단위 면적당 가축 수에서 유럽 1위다.
이 나라는 면적이 한국의 40%(4만1865㎢)에 불과하지만, 집약적 축산업과 농업 고도화 덕분에 농산물 수출량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자료를 보면, 2019년 네덜란드의 농산물 수출액은 세계 1위 미국(1207억4700만달러)의 68% 수준인 820억6천만달러에 달했다. 최대 수출품은 과일과 채소(226억5900만달러)였고, 육류와 가공품(112억8300만달러), 유제품과 달걀(94억6700만달러)도 주요 수출품이다. 네덜란드에서 농업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다.
그와 함께 농민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네덜란드 정부는 그동안 농업 규제를 꺼려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그 결과 네덜란드 최대의 자연보전지역인 더호헤벨뤼버 국립공원이 심각한 생물다양성 위기에 직면했고, 생태계의 영양 균형이 깨지며 달팽이의 껍질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농민들은 “농장이 없으면 식량도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농민들의 반발은 2019년 5월 행정법원이 정부의 질소 정책이 유럽연합 규정 위반이라고 판결한 이후, 정부가 가축 사육 규모에 대한 제한 등에 나서자 본격화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6월 농장 매입·폐쇄 계획을 공식화했다. 농민들은 즉각 전국에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최근 다시 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 남서부 하제르스바우더에서 120마리의 소를 기르는 농민 바르트 코이만은 “우리는 불을 지르고 도로를 막고 싶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끝이다. 우리는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의 항의 운동 과정에서 탄생한 정당인 ‘농민시민운동’(BBB)의 카롤리너 판데르플라스 대표는 “농민들이 범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그들이 하는 건 모두 잘못됐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환경 보전을 위한 농업 규제는 네덜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4%가 농업·임업·토지 이용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는 에너지 부문(73.2%)에 이은 두번째 규모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화석연료 규제에 이어 농업 규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도 2025년부터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에 세금을 물리기로 하는 등 각국이 농업 규제에 나서고 있다. 뉴질랜드 옥스퍼드의 소 사육 농장. 옥스퍼드/AP 연합뉴스
뉴질랜드 정부는 세계 처음으로 2025년부터 농업 분야의 메탄·탄소·아산화질소 배출에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저신다 아던 총리가 지난 10월 이 계획을 발표하자, 농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반대 운동을 조직한 농민 브라이스 매켄지는 “우리는 소나무만 심고 식량은 키울 수 없는 나라를 원치 않는다”며 “우리는 미래의 식량 안보를 원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도 2030년까지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5% 줄일 계획이고, 덴마크는 농업과 임업의 가스 배출량을 최대 65%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때문에 내년 이후 농업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여러 나라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네덜란드의 농업 관련 싱크탱크 ‘클라임잇’(Clim-Eat)의 설립자 다누시 디네시는 농업 분야 기후변화 대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농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 정책은 훨씬 더 점진적이면서 포괄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농민들을 더 참여시키면서 그들의 요구도 반영할 것인가가 해법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는 집약적 농업이 상대적으로 덜 보급된 아프리카에서도 친환경 농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의 기아 퇴치 운동·연구 단체인 ‘인코타’(INKOTA)는 최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농업의 문제를 분석한 보고서(‘황금 탄환 또는 나쁜 선택?’)를 내어 전세계 식량 위기의 중심에 화학비료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화학비료 가격이 에너지나 농산물 가격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며 이는 아프리카 등에 심각한 농업 위기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보면, 2016년 가격을 100으로 했을 때 지난 10월 현재 국제 비료 가격은 304.7로, 에너지(259.9), 식품(134.8)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 보고서는 뉴트리언(캐나다), 야라(노르웨이), ‘시에프(CF) 인더스트리’, 모자이크(미국) 등 4대 업체가 전세계 질소비료의 33%를 생산하는 등 세계 비료업계의 독과점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들이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 아프리카를 노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농부들이 쌀을 수확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화학비료 가격 폭등과 함께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가자/신화 연합뉴스
보고서는 탄자니아와 가나 등에서 확산하고 있는 유기농 비료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탄자니아의 유기농 비료 생산업자 아민 자카리아는 유기농 비료를 쓰는 농민들이 비료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토양 비옥도 증가, 농작물의 영양소 개선, 농산물 맛 개선 등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전했다. 가나의 유기농 비료 업체 ‘사본 사케’의 창업자 오드리 다르코는 자국 농민들도 비슷한 효과를 보고 있다며 화학비료 가격 폭등에 직면한 농민들 중 상당수가 대안을 애타게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세네갈 정부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지난해 11월 농업 보조금의 10%를 유기농 비료 생산에 투입하는 지원책을 내놨다.
일부에서는 환경 친화적인 농업으로 전환하면 자칫 식량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하지만, 과장된 우려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네덜란드 싱크탱크 클라임잇의 디네시는 매년 전세계에서 생산된 식량의 3분의 1이 그냥 버려지는 게 현실이라며 식량 손실을 줄이기 위한 생산 체계 개선, 땅과 농업용수 관리 강화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자연기금(WWF) 네덜란드 지부의 식량·농업 책임자 나타샤 우를레만스는 농민들이 자연을 동맹 관계로 보는 시각 전환이 이뤄진다면 생태 위기와 농업 위기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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