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을 받아 벽면이 너덜너덜해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아파트 건물 앞에서 2월25일(현지시각) 이곳에 살던 주민이 절규하고 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10만명 희생 부른 우크라전…점점 고립되는 러시아
러시아가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12월26일로 306일째 침략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전쟁으로 최대 10만명 이상의 목숨이 희생됐고 전세계는 핵전쟁도 배제할 수 없는 암울한 ‘신냉전 체제’로 빠져들었다. 전쟁은 장기화됐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느 쪽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세계는 피로 물든 대결과 파괴로 2023년 새해를 맞게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유럽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최악의 전쟁터로 바꿔놓으면서 크나큰 희생을 낳았다. 지금까지 민간인 사망자만 6702명(유엔 집계)에서 3만3430명(우크라이나 정부 추산)으로 추산된다. ‘부차 학살’ 등 러시아군의 잔혹한 전쟁 범죄도 잇따라 확인됐다. 우크라이나군 전사자는 1만명(우크라이나 정부 추산)에서 6만1207명(러시아 주장)으로 추정되고, 러시아군 전사자는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자료 집계로만 1만229명이다. 미국 등이 추정하는 전체 군 사상자는 10만명 수준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어느 쪽도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는 ‘소모전’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침공 초기인 2월 말~3월 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제2도시 하르키우 주변을 포위하면서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해 3월 말~4월 초 키이우 주변에서 후퇴했고, 9월 초 하르키우주에서도 완전히 밀려났다. 11월11일에는 9개월 동안 점령했던 헤르손주의 주도 헤르손시도 다시 내줬다. 그 이후 전쟁은, 지상에서는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주에 모든 전력을 쏟아붓고, 공중에서는 미사일을 쏘아대며 전력망 등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이유 중 하나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대에 따른 안보 위협을 내세웠지만, 결국 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결집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핀란드·스웨덴은 5월15일 74년 동안 고수하던 군사적 중립을 포기하고 나토 동시 가입을 선언했고, 회원국 정상들은 6월28일 두 나라의 가입을 승인했다. 미국의 21일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등을 포함한 2조3800억원 규모 추가 군사 지원 발표에 이르기까지, 서방의 군사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도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기술 수출 금지, 중앙은행 자산 압류 등 제재 수위를 높여왔고, 지난 5일엔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를 실시해 러시아 경제의 핵심인 에너지 분야에 강력한 일격을 가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14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발리/로이터 연합뉴스
21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대결이라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동맹국 등과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구성 등 옛 냉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한 압박을 가하며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려 했다. 중국은 첨단기술 자립 능력 신장과 핵무장 강화 등으로 대응하면서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다.
8월 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부르며 대만이 ‘충돌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새삼 확인됐다. 중국군은 펠로시 의장이 떠난 직후 대만섬을 포위하며 강력한 군사훈련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억제를 위해 유사시 대만에 대한 미군 투입 가능성을 거듭 언급하며 오랫동안 지켜온 ‘전략적 모호성’에 배치되는 입장을 밝히는 중이다. 11월14일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첫 대면 회담에서 “책임 있는 경쟁”과 “평화 공존”을 얘기했지만 갈등이 해소될 가능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16일 중국 베이징의 한 약국에서 한 주민이 약을 사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중국몽’을 앞세워 2012년 집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16일 개막한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했다. 1980년대 확립된 중국 지도자의 ‘10년-2연임’ 규정을 깨고 장기 집권에 들어간 것이다. 중국 건국의 주역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시 주석이 3연임을 넘어, 4·5연임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 주석 3연임’이라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를 마무리한 지 채 두달도 안 된 12월7일, 중국 당국은 3년 동안 유지해오던 강력한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접고 ‘위드 코로나’에 들어갔다. 고강도 방역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고 ‘방역이 아닌 밥을 달라’며 백지 시위를 벌인 주민들의 커지는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 여파로 오미크론 변이가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중국 전역을 휩쓸었고, 불과 2주 만에 2억5천만명이 감염됐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중국의 연착륙 여부에 세계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한 주식 거래자가 9월21일(현지시각) 금리 인상 뉴스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지난 한해 동안 전세계가 고물가와 씨름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결정타를 날렸다. 올해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7%에 달했다. 일부 국가에선 80%를 넘었다.
세계 곳곳에서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주요국들은 앞다퉈 금리를 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5월 22년 만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6∼11월 네번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강달러’ 현상 속에서 아프리카·아시아의 빈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문을 두드렸다.
거듭된 금리 인상으로 인해 연말이 되며 주요 경제지표는 경기침체의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경제 전망 가운데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이들이 더욱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파키스탄 신드주 시카르푸르의 홍수 피해 지역에서 8월30일(현지시각) 한 수재민이 집에서 건져낸 가재도구를 옮기고 있다. 시카르푸르/AP 연합뉴스
2022년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시대 이전보다 1.15℃ 높아졌다. 세계기상기구는 올해가 역사상 5~6번째로 더운 해였다고 밝혔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지구 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자는 2016년 파리 기후회의의 역사적 합의는 위기에 놓여 있다.
인류가 직면하게 된 위기는 국토의 3분의 1이 잠기고 주민 7명 중 1명이 이재민이 된 지난여름 파키스탄 대홍수에서 잘 드러났다. 동아프리카의 가뭄, 유럽을 강타한 40℃를 넘는 열파와 산불, 크리스마스를 맞아 북미를 강타한 혹한 등 극단적 기후변화가 심화되고 있다.
인류는 11월 초 이집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의 기후변화 피해 대응을 돕는 기금 마련에 합의했다. 하지만 온난화의 주범인 석유·천연가스 등의 단계적 감축 일정엔 합의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분열로 지구온난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인류는 ‘물이 끓는 냄비의 개구리’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내년 4월 중순까지 가동을 연장하기로 결정된 독일 북부의 엠슬란트 원전 전경. 링겐/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는 ‘에너지 위기’에 빠졌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에너지를 노골적으로 무기화하며 ‘가스관 점검’ 등을 이유로 유럽에 대한 공급량을 크게 줄였다. 그 여파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네덜란드 온라인 거래소 티티에프(TTF)의 선물 거래 기준으로 지난 8월26일 1㎿h당 345.7유로(47만원)까지 치솟았다. 전쟁 전이던 2월 초 가격의 4배였다.
이런 상황에서 9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폭발사고가 일어나 가스관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유럽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리는 등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며 에너지 절약 노력 등을 벌이는 중이다.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장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원자력 발전에도 주목하고 있다. 영국은 2050년까지 최대 7기의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올해 ‘탈원전’을 완료할 계획이었던 독일도 원전 3곳의 가동을 2023년 4월 중순까지 연장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 국장이 9월27일 도쿄 부도칸(무도관)에서 열려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가 아베 전 총리의 유골이 담긴 함을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건네고 있다. 도쿄/EPA 연합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보수·우익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아베 신조(67)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7월8일 거리 유세 과정에서 총격을 당해 숨을 거뒀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은 해상자위대원 출신 야마가미 데쓰야(41)였다. 어머니가 통일교에 빠져 고액을 기부하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자,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와 관련이 깊다고 보고 범행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6일엔 일본 정부가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을 보유하기로 결정하는 등 지난 70여년 동안 유지해온 안보정책의 틑이 크게 바뀌었다. 5년 뒤엔 일본의 국방예산이 100조원을 넘으며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대국으로 올라설 예정이다.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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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10월30일(현지시각) 상파울루에서 환호하고 있다. 상파울루/로이터 연합뉴스
올해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정치인의 기세가 거셌다. 지난 6월 콜롬비아에서 게릴라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가 첫 좌파 대통령에 당선된 데 이어, 10월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겨 12년 만에 다시 브라질 대통령에 복귀하게 됐다.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2019년)·볼리비아(2020년)·페루(2021년)·칠레(2021년) 등에서 잇따라 좌파가 집권하는 흐름이 올해도 이어진 것이다. 중남미가 분홍빛으로 물드는 ‘핑크타이드’가 2000년대 이후 다시 찾아왔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런 변화는 집권 우파의 무능과 부패에 민심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들 우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빈부 격차만 확대하고 경제난 해소에 무기력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보인 ‘우익 선동정치’가 이들의 폐해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월8일(현지시각)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숨을 거뒀다. 사진은 6월2일 생전의 여왕이 찰스 왕세자 등과 함께한 모습. 런던/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월8일 96살을 일기로 숨졌다. 여왕은 1952년 2월6일 스물다섯살 나이로 아버지 조지 6세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70년7개월 동안 국왕 자리를 유지하며 전후 영국이 겪은 온갖 영욕을 함께한 최장수 국왕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고령의 나이에도 흔들림 없이 ‘영국의 상징’으로 남아 있던 여왕의 장례식은 세계 200여개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19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에 앞서 14일부터 엿새 동안 여왕의 주검 앞에서 애도의 뜻을 전하는 일반 공개 행사에 25만명 넘는 시민이 몰렸다. 숨진 여왕은 1년 앞서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 공의 옆에 묻혔다. 여왕의 서거에 따라 첫째 아들인 찰스(74) 왕세자가 자동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여왕의 서거는 그가 상징했던 한 시대의 종언이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한 이란 여성이 10월18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재 이란대사관 앞에서 이란 여성의 자유를 촉구하는 집회 도중 머리를 자르고 있다. 자카르타/EPA 연합뉴스
이란에서 9월16일 22살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도덕경찰에 구금된 뒤 병원에서 의문사했다. 분노한 이란 젊은이들이 시작한 히잡 반대 시위는 곧바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져 100일 이상 지난 지금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 최근엔 23살 청년을 크레인에 매달아 처형하는 등 두차례 사형을 집행했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23일 현재 시위대 506명이 사망하고 1만8500여명이 구금됐다고 밝혔다. 반인권적 행태를 벌이는 이란 고위 인사들에 대해 미국·유럽 등은 제재를 쏟아내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이란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공격형 드론 등을 제공해 서방 국가들과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미국과 진행해오던 이란 핵협정 부활 논의도 중단됐다. 이란의 고립이 심화되는 와중에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감산 등을 주도하고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