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에서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 지중해로 빠져나가기 위해 대기중인 선박들. 예니카피/로이터 연합뉴스
서방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시행 첫날부터 이 조처의 여파로 흑해를 통해 러시아 쪽 항구에서 원유를 수송하는 유조선들의 발이 묶이는 일이 벌어졌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5일(현지시각) 서방의 상한제 실시에 맞춰 튀르키예(터키) 정부가 자국 바다를 지나는 유조선들에 새로운 보험 증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19척의 유조선이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해협은 흑해 연안의 항구를 드나들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통로다. 유조선 중에 이 해역에 가장 오래 발이 묶여 있는 유조선은 지난달 29일 도착해 6일째 머물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은 이날부터 배럴당 60달러를 넘는 가격에 수출되는 러시아산 원유 수송을 거부하고 이런 원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에 대해 보험 등 운송 관련 서비스도 제공하기 않기 시작했다. 원유 업계 관계자들은 이 조처 시행을 계기로 튀르키예 정부가 유조선들에게 해상 기름 유출 사고 등에 대비한 보험을 들었다는 증명을 새로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가 요구하는 증명서는 국제 해상 운송과 관련된 책임 보험의 90% 이상을 다루는 기관인 ‘국제 피앤드아이(P&I) 클럽’이 발급한 것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보험계약자 집단이 구성한 보험회사의 연합체인 이 기관은 튀르키예의 요구가 통상적인 요구 수준을 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관은 성명을 내어 연합체 소속 보험 중 한 곳이 서방의 제재를 어기는 경우에도 보험이 정한 보장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기관의 닉 쇼 최고경영자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당국과 건설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해역에 발이 묶인 유조선 중 다수는 카자흐스탄에서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 항구까지 운송된 원유를 싣기 위해 흑해를 드나드는 배들이라고 선박 중개업자들이 설명했다. 카자흐스탄산 석유는 서방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 유조선들까지 발이 묶였다는 사실은 서방의 러시아산 원유 제재가 전세계의 원유 유통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다. 미국 재무부의 한 관계자는 “튀르키예의 새 정책이 튀르키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들의 이동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영국과 함께 튀르키예 정부에 이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최근 서방의 자국산 원유 제재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비서방 보험사에 보험을 들고 운항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단에 속한 유조선 등 러시아산 원유 수송선들은 러시아 보험사가 직접 튀르키예 정부에 보증서를 제공해 해협 통과 허락을 받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가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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