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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베이징 시민들, 외국 대사관 많은 곳에 모여 ‘백지’ 든 까닭

등록 2022-11-28 12:53수정 2022-11-28 16:45

27일 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허 부근에서 당국의 봉쇄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위챗 갈무리
27일 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허 부근에서 당국의 봉쇄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위챗 갈무리

28일 새벽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허(하천). 전날 밤부터 밤샘 시위가 벌어졌던 유엔(UN) 대사관 부근에 공안 차량 10여대가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공안 서넛이 짝을 지어 주변을 순찰했고, 사복 공안으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하게 주변을 살폈다. 하천을 따라 산책·운동하러 나온 시민들은 전날의 시위 사실을 잘 모르는 듯했다. 한 시민에게 어젯밤 이곳에서 시위가 있었던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베이징 시민 수백명이 량마허에 모인 것은 전날 저녁이었다. 차오양구의 작은 하천인 량마허 부근에는 한국대사관 등 외국 대사관이 모여 있다. 또 근처에 산리툰이라는 번화가가 있어 외국인 등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다. 위챗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은 시민들은 이날 량마허에 모여 “베이징 봉쇄 해제하라”, “전국 봉쇄 해제하라”고 외치며 고강도 방역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도 시위를 구경하거나 직접 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한 청년은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 등을 찾아내 방역을 하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확진자가 나왔다고) 동네 전체를 봉쇄하는 식의 방역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하얀 에이(A)4 용지를 들고나와, 백지 시위를 벌였다. 지난 24일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 불이 나 10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중국 온라인을 중심으로 A4 용지를 들고 본인의 얼굴을 공개한 채 찍은 사진을 올리는 이른바 ‘백지 사진’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당국의 봉쇄 정책에 대한 항의 뜻을 밝히면서도 아무런 메시지를 쓰지 않아 검열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28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허 부근에 공안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28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허 부근에 공안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이튿날 새벽까지 시위를 진행하던 시민들은 지난달 중순 ‘현수막 시위’가 있었던 스퉁챠오로 이동해 시위를 하다 해산했다. 쓰퉁챠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 짓는 정치 행사(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를 사흘 앞둔 지난달 13일 한 중국인이 ‘핵산(검사) 말고 밥을 달라’, ‘시진핑 파면’ 등을 쓴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인 곳이다.

베이징 공안은 이날 시위대와 구경하는 시민들에게 돌아가라고 권고했지만, 시민들을 강제해산하거나 체포하지는 않았다. 시위대의 요구가 ‘봉쇄 해제’ 쪽에 집중되고, 시 주석 퇴진 등 정치적인 구호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이징에서는 최근 시 당국의 과도한 봉쇄 조처에 대한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차오양구 왕징의 몇몇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난 26일 확진자 발생을 이유로 아파트 단지 전체가 봉쇄되자 주민들이 집단으로 항의 시위를 벌였고, 한나절 만에 봉쇄가 풀리기도 했다. 지난 11일 중국 국무원이 봉쇄 정책을 완화하는 20가지 조처를 내놓았는데, 시민들은 이를 근거로 과도한 봉쇄가 국무원 지침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이징 방역 당국은 지난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과도한 격리 수용 및 차단 행위를 막고, 임시 봉쇄 때 24시간을 초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등 유화적인 조처를 보이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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