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의 가스관이 시작되는 수드자 가스 펌프 시설. 수드자/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유럽 공급용으로 현재 가동 중인 유일한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마저 축소하기로 하고, 유럽연합(EU)은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 최종 합의를 서두르면서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기업 가스프롬은 2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를 통해 몰도바에 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에서 우크라이나가 가스를 빼내가고 있다며 오는 28일부터 몰도바 공급 물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가스프롬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성명에서 “몰도바에 공급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인근) 수드자 가스관 진입 지점에 공급한 물량과 몰도바가 실제로 받은 물량에 차이가 발생했다”며 “우크라이나 영토를 지나면서 사라진 가스량이 모두 5252만㎥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가스프롬은 이 때문에 러시아가 11월 중 공급한 가스 가운데 2494만㎥에 대해 대금을 지불받지 못했다며 28일 오전 10시부터 손실 부분만큼 가스 공급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가스관 운영사’(GTSOU)는 자국이 가스를 빼돌렸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 회사는 성명을 내어 “가스프롬의 주장은 유럽 국가들에 대한 가스 공급 축소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실 조작”이라며 “러시아가 가스를 정치적 압력 도구로 활용하는 건 처음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러시아의 몰도바 공급 물량은 많지 않지만, 이 가스관은 현재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유일한 가스관이라는 점에서 에너지 시장에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지난 8월 이후 발트해 밑을 거쳐가는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가동을 중단하고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를 거쳐가는 가스관만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노르트스트림1·2 가스관은 지난 9월 26~27일 잇따라 강력한 폭발로 파괴되어, 가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노르트스트림2는 건설은 끝났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독일이 승인을 취소해 가동은 되지 않고 있는 가스관이다. 에너지 관련 자문기업 ‘아이시아이에스’(ICIS)의 분석가 톰 머제크맨저는 이번 조처는 추가 가스 공급 축소를 알리는 전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유럽연합 등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대사들이 23일 만나 러시아산 원유 가격에 대한 상한제 시행 방안에 대한 합의를 시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은 일정 금액 이상으로 수출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서는 12월 5일부터 운송을 거부하고 운송선에 대한 보험도 제공하지 않기로 했으나, 아직 상한 액수에는 최종 합의하지 못했다. 신문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은 상한선을 배럴당 20달러까지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60달러 안팎으로 설정하는 안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전쟁 전 러시아의 평균 수출 가격인 배럴당 65달러 수준으로 상한을 설정함으로써 러시아가 국제 시장에 꾸준히 원유를 공급하도록 유도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럽연합이 상한제 시행 방안을 최종 확정할 경우, 주요 7개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같은 조건으로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러시아는 가격 상한제에 동참하는 국가에는 원유 수출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한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러시아 가스 공급 축소에 따른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회원국들이 주장해온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의 세부 방안을 이날 공개했다. 집행위가 제안한 안은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티티에프(TTF) 선물 가격이 1메가와트시(㎿h)당 275유로를 넘는 상황이 2주간 지속되고, 동시에 가스 가격이 액화천연가스(LNG)보다 58유로 비싼 상황이 10일간 지속되면 275유로의 상한선을 자동 발동하는 것이다. 최근 가스 선물가격이 120유로 수준을 보이고 있어서, 이런 상한제 방안으로는 실질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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