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퉁이 생전 스페인 통신사(EFE)와 인터뷰하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중국 톈안먼(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실각한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비서 출신으로 이후에도 공산당을 매섭게 비판해온 바오퉁이 9일 숨졌다. 향년 90.
10일 홍콩 <명보>는 바오의 아들 바오푸가 전날 오전 7시께 부친이 베이징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바오푸는 아버지가 혈액 질환을 앓았고, 지난 3월부터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오는 15일 바바오산 혁명공묘에서 열릴 예정이다.
바오는 1932년 저장성 하이닝에서 태어나 상하이에서 성장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지지했으며,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총리였던 자오쯔양의 수석 비서로 일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시기, 바오는 총리 비서로 일하면서 중국 경제의 개방과 당 지도부 교체 규정과 관련한 정책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의 운명도 바뀌었다. 당시 자오쯔양 총서기는 실권자였던 덩샤오핑 당 중앙군사위 주석의 뜻과 달리 톈안먼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을 반대했다. 바오 역시 자오쯔양에 동조했다. 바오는 자오쯔양이 실각하며 체포당한 뒤 3년여의 재판 끝에 국가 기밀 유출과 반혁명 활동 등 혐의로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바오는 1996년 출소한 뒤에도 쭉 연금 상태에 있으면서 중국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지속해 왔다. 1999년 톈안먼 사건 10주년을 맞아 자오쯔양에 대한 재평가 촉구 서한을 당에 보냈다. 2006년 한 기고문에선 “일당독재를 없애야 중국이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이 해외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하자, <로이터> 통신이 처음 찾아간 이가 바오였다. 당시 가택연금 상태였던 그는 “당신과 내가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개선”이라며 “이런 개선이 오래 계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시진핑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2018년 쉬장룬 칭화대 교수가 시 주석의 1인 권력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린 뒤 그의 신병에 대한 걱정이 일자, 바오는 “중국 당국이 용감한 주장을 한 쉬 교수의 목소리를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17년엔 홍콩의 중문필회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중국이 민주화 인사 류샤오보를 기려 제정한 ‘류샤오보 기념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아들이 대리 수상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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