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크림반도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 지역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 투표함이 개봉되고 있다. 러시아는 도네츠크 등 4개 지역뿐 아니라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림반도 등에도 해당 지역 주민들이 피란해있다며 투표소를 설치했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에서 합병 찬반 주민투표를 마쳤다. 러시아는 오는 30일 이 지역 합병을 공식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지역에서 전투를 ‘국토방위’로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 등 러시아가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 침공 뒤 점령한 4개 주에서 치러진 러시아와의 합병 찬반 주민투표에서 90% 이상의 합병 찬성의견이 나왔다고 현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27일 보도했다. 이들 지역 선관위가 발표한 찬성률은 도네츠크 99.23%, 루한스크 98.42%, 자포리자 93.11%, 헤르손 87.05% 순이었다. 최종 결과는 앞으로 5일 내 확정 발표된다.
투표를 치른 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5% 정도로, 면적은 약 9만㎢이다. 포르투갈 전체와 맞먹고, 남한보다는 약간 작다. 지난 23일부터 5일간 열린 주민투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데다, 아무런 외부 감시도 없이 치러졌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번 주민투표를 근거로 4개 지역을 합병하는 선언을 곧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는 30일 러시아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4개 지역의 러시아 합병을 공식 선언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서방의 정보당국들은 전했다.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이 27일 밤 합병안을 발의하고 28일 이를 의결한 뒤, 29일 상원이 이를 승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 투표부터 최종 선언까지 모든 절차를 완료하는 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푸틴의 합병 선언 뒤 러시아는 이 지역 전투를 ‘국토방위’로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작전’에서 ‘대테러 전쟁’이나 ’대테러 작전’으로 규정을 바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즉, 돈바스 지역(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러시아계 주민을 해방하는 군사작전’에서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이들 지역에서 치안과 방어를 위한 작전’으로 바꾼다는 의미이다.
주민투표와 러시아의 합병 선언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른 국면으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을 합병한 뒤부터는 점령지를 굳히는 방어전으로 들어갈 공산이 크다. 러시아가 최근 영토 방어를 위해서는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에 점령당했던 동북부 지역을 탈환 당하는 등 반격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가 주민투표와 합병을 서두른 것도 이제 전쟁을 공세에서 방어로 돌리기 위한 명분과 조건을 만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공세에서 방어로 전환하면, 전쟁 수행 부담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겨울이 다가오면 공세전보다는 방어전이 훨씬 유리하다. 러시아가 최근 부분적 동원령을 내려서 예비군 동원에 나선 것도 오는 겨울의 방어전에 대비한 안정적인 병력 확보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러시아는 오는 11월 4일 ’국민통합의 날’에 합병 주민투표를 할 예정이었으나, 동북부 전선에서 반격당하는 등 전황이 악화하자 서둘러 이번 투표를 추진했다. 푸틴 대통령은 주민투표 일정이 결정된 이튿날인 지난 21일 동원령을 발동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