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쿠바 아바나에서 한 남성이 가족법 개정안 국민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쿠바에서 동성혼과 동성부부 입양, 대리모 등을 허용하는 가족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됐다.
26일 <에이피> (AP)통신 등에 따르면, 쿠바 선거관리위원회는 25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가족법 개정안이 찬성 67%(393만6790표), 반대 33%(195만90표)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가족법 개정안은 지난해 공개된 뒤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친 뒤 쿠바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00쪽이 넘는 새 가족법 개정안은 동성혼과 동성부부의 입양을 허용하는 내용을 비롯해 여성과 아동, 노인에 대한 권리 보장을 강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또한 대리모 출산을 허용해 비생물학적 부모에게도 권리를 부여하고, 젠더 폭력 대책을 강화하며, 부부가 가사 노동에서 동등한 부담을 지도록 장려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1975년 제정된 기존 가족법은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정의했지만 개정안은 “두 사람 간 결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25일 미구엘 디아즈카넬 쿠바 대통령도 이날 아바나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했다. 결과가 나온 뒤 미구엘 디아즈카넬 쿠바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사랑이 곧 법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더 나은 나라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법의 통과를 수년간 기다렸던 쿠바의 다양한 세대에게 빚을 졌다”고도 말했다. 디아즈카넬 대통령과 쿠바 정부는 이번 법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2019년 쿠바 공산당 총서기로 임명된 디아즈카넬 대통령은 1959년 쿠바의 공산주의 혁명 이후 처음으로 카스트로 가문 출신이 아닌 지도자다.
미구엘 디아즈 카넬 쿠바 대통령이 25일 수도 아바나에서 가족법 개정안 국민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5일 쿠바 아바나의 투표소에서 선거 관리원이 투표 용지를 세고 있다. AFP
쿠바 정부가 제안하는 정책 입법의 90% 이상이 총체적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가족법 개정안은 높은 찬성율로 통과됐다고 <뉴욕타임즈>는 26일 설명했다. 알베르토 아르(R) 콜 미국 드폴 대학 법학과 교수는 신문에 “(동성혼 등) 이러한 조처들은 법이 엄격하게 규제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는 많은 국민들의 생각으로 인해 압도적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고 말했다. 한편, 가족법 개정안이 이례적으로 국민 투표에 부쳐진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연구원인 후안 파피에르는 자신의 칼럼에서 “성소수자 커플이 차별에서 자유로울 권리는 개인의 권리에 관한 법안으로, 정부가 인기 투표에 부쳐 정치적 행사를 치르는 것은 잘못됐다”고 썼다.
쿠바 공산 정부는 1960년대 성소수자를 노동 수용소에 보내는 조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바 혁명을 주도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조카인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현재 국립성교육센터의 소장으로 일하며 쿠바에서 성소수자 인권 향상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2009년 성전환 수술을 무료로 시행하는 정부 시책을 재개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해왔으며, 이번 개정안 통과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이 법이 통과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쿠바 외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도 최근 몇 년 사이 성소수자 권리 향상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9년 에콰도르 헌법재판소는 동성 커플의 법적 결혼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2020년 코스타리카도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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