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숨진 22살 여성 아미니의 사진을 높게 들었다. AFP 연합뉴스
이란에서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구금돼 끝내 숨진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이란의 여성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됐다. 이란은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며 언론 통제에 나섰다.
21일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 총회에 참석해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다. 공공장소에서의 복장규정 위반으로 체포된 아미니가 16일 의문사한 것에 대해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선 아미니 사망 사건에 대해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하루 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국(OHCHR)은 이란 종교경찰이 최근 몇달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을 겨냥해 순찰을 확대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 영상을 공개했다. 증거 영상엔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종교경찰로부터 뺨을 맞고, 곤봉으로 구타당하고, 경찰 차량 안에 잡혀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나다 나시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아미니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이란 종교경찰의) 고문과 학대 혐의는 독립적인 권한 있는 조사당국에 의해 신속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 당국은 시위 발생 닷새째인 21일 이번 사태로 인한 희생자가 경찰을 포함해 모두 8명이며, 이란 전역에서 최소 1천명의 시위대가 체포됐다고 집계했다. 인권단체 ‘헹가우’는 이번 시위로 10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란 젊은이들은 아미니의 의문사를 ‘인권 억압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항의 시위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당국의 과도한 대응이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자원봉사 조직인 ‘바시지’가 지난 며칠 사이 시위대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국제앰네스티는 21일 보고서를 내어 이란 당국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새총·최루탄·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이피>는 시위대가 체포, 수감, 심지어 사형 선고 가능성을 무릅쓰며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겨냥해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수니파 국가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광범위하게 인정하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해왔다.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 시절에는 느슨히 법을 집행했지만, 지난해 8월 라이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사정이 악화됐다.
사태 전개에 당황한 이란 정부는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고 있다. 이미 페이스북·텔레그램·트위터·유튜브 등의 접속 장애가 보고되는 중이다. 인터넷 접속 차단 감시단체인 ‘넷블록스’는 이란에서 사용자가 몇백만에 이르는 인스타그램의 접속이 안 되고 있으며 휴대폰 통신망도 일부 접속이 제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시민단체는 당국의 인터넷 접속 제한이 무력 유혈진압의 전조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2019년 연료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했을 때도 인터넷을 먼저 차단한 뒤 본격적인 강제진압에 나섰다”며 “이번에도 그런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2019년 시위 땐 당국의 강경진압으로 무려 1500여명이 숨졌다.
미국은 발빠르게 압박에 나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유엔 총회에서 “우리는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려고 시위하는 이란의 용감한 시민과 여성들의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19일 이란 항공기 183대 등을 수출규정 위반을 이유로 제재 목록에 올렸다.
김미향 박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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