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각) 러시아로부터 되찾은 동북부 도시 이줌을 방문해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줌/UPI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돈바스의 친러시아계 분리독립 세력 거점 인근까지 진격한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각) 하르키우주 전략 요충지를 방문해 영토 탈환을 위한 공세 강화를 선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로부터 탈환한 동북부 요충지인 하르키우주 이줌을 방문해 우크라이나를 전쟁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줌 시청 건물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게양되는 것을 지켜본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 국기가 앞으로 모든 우크라이나 도시와 마을에서도 이렇게 휘날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줌은 북동부 하르키우와 동부 돈바스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나흘 전 우크라이나군이 대공세를 펼쳐 러시아군으로부터 되찾았다. 도심의 건물 대부분은 격렬한 전투로 손상된 모습을 보였다고 통신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런 모습은 충격적이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며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도 같은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러시아군을 몰아낸 지역에서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는 시신 6구를 발견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올렉산드르 필차코우 하르키우 지방 검찰청장은 시신들이 하르키우시 동남쪽 마을인 흐라코베와 잘리즈니체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인근 지역 관리들도 유사한 학살 행위의 흔적을 확인했다고 주장했으나, 지난 4월 초 부차에서 확인된 학살과 비슷한 잔악 행위의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루한스크 공격 채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루한스크주 서부 도시 스바토베와 중북부 도시 스타로빌스크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전날 러시아군이 철수했던 크레민나에는 러시아군이 재진입했다고 덧붙였다. 크레민나는 루한스크주의 주요 도시인 세베로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의 인근 마을이다. 러시아군은 지난 6월부터 한달 이상 포위한 끝에 두 도시를 점령했다.
2014년부터 루한스크주 일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친러시아계 분리독립 세력 ‘루간스크인민공화국’도 우크라이나군이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까지 접근하면서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인정했다. 이 공화국의 지도자 안드레이 마로치코는 러시아 방송에 나와 “일부 지역에서는 루간스크인민공화국 경계와 아주 가까운 곳에 전선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동부 전선이 하르키우주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오스킬강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러시아군이 강변 전역의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를 막아낼 만큼 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추가 병력 투입도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은 이날도 미사일 등을 이용한 공습에 집중했다. 러시아군은 남부 흑해 연안의 전선 인근 도시인 미콜라이우와 자포리자 원전 인근 도시 니코폴을 폭격했다. 이날 공격으로 미콜라이우에서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고 비탈리 킴 미콜라이우주 주지사가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전쟁 이후 서방이 장기적으로 자신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전후 안전보장안을 제시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시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이런 내용의 안전보장 권고안을 발표했다. 예르마크 비서실장은 안전보장안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어야 하며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공격 위협에 처할 경우 즉각 지원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당하면 안전보장국들은 곧바로, 예컨대 24시간 안에 논의를 소집해 72시간 안에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가 지난 2월 하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사가 우크라이나와 종전안에 합의했으나 푸틴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통신은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드미트리 코자크 특사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담은 합의안을 마련해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나, 푸틴 대통령은 합의안이 불충분하다며 거부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 병합을 침공의 목표에 추가한 뒤 전쟁을 계속했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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