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절인 9월 5일을 기점으로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5일부터 뉴욕 외곽에 사는 직원들이 백신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사무실로 나올 수 있게 했다. 정기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모건스탠리도 이날부터 코로나19 관련 조치를 완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뉴노멀’(새로운 정상상태)로 자리 잡았던 재택(원격)근무를 어떻게 끝낼지를 둘러싸고 기업들의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재택근무 종료는 경쟁이 심하고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미국 월가 투자은행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지난 2년 동안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노동자들에게 사무실로 출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뉴노멀로 여겨졌던 재택근무가 끝나게 되면 노동시장과 산업계에도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무실 근무가 다시 익숙해질 즈음엔 성별이나 인종과 관련한 불평등 이슈가 제기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골드만삭스 등이 노동자들이 사무실에 복귀할 수 있게 빗장을 푼 5일은 미국의 노동절(매년 9월 첫번째 월요일)이다. 노동절 주간에 맞춰 코로나19 이전처럼 사무실에 나와 일하도록 방향을 튼 것이다.
사무실 복귀를 결정한 기업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애플이다. 애플은 이날부터 화요일과 목요일을 포함해 일주일에 3일 이상을 사무실에 나오도록 했다. 노동자들을 회사로 끌어내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애플은 오미크론 변이가 나오기 전인 지난해 6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조짐을 보이자 ‘주 3일 출근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새 변이로 다시 확진자가 늘고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제도 시행을 미뤘다. 이 과정에서 출근 지정일을 월·화·목 3일에서 화·목으로 하루 줄이는 등 ‘전술적 후퇴’를 하기도 했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전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월·화·목 지정에서 화·목 지정으로) 바뀐 체계가 유연하게 일하는 능력을 향상하는 동시에 우리 문화에 매우 필수적인 대면 협업을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싱가포르 금융지구의 건물들. 싱가포르/AFP 연합뉴스
다른 기업들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디어·통신 업체인 미국 컴캐스트, 캐나다 왕립은행 등도 노동절 이후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홈트레이닝 플랫폼 기업인 미국 펠로톤은 11월14일부터 본사 근무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 3일 사무실 출근 정책을 시작하기로 했다. 캐나다의 부동산투자신탁회사인 드림오피스의 제이 장 재무책임자는 “노동절 이후가 (노동 방식 변화의)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사무실로 돌아오면 (사무실 임대업 등을 하는) 우리 회사는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노동절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9월5일이다.
기업들은 왜 직원들을 회사에 불러내지 못해 안달일까. 얼굴을 맞댄 소통을 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캐나다의 노바스코샤은행은 이달부터 대면했을 때의 장점이 뚜렷한 업무에 대해서는 ‘함께 모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데이브 매케이 캐나다 왕립은행 최고경영자도 지난달 노동자들에게 더 자주 사무실로 나오라고 요구하며 “원격근무는 함께 있을 때의 에너지와 자발성, 아이디어, 진정한 소속감과 재미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시엔비시>(CNBC)는 5월 기업의 재택근무 종료 시도에 통제 목적도 깔렸다고 분석했다. 재택근무가 확산하기 시작하던 때에는 집이 사무실보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지난 2년 동안 기업도 노동자도 재택근무에 익숙해졌다. 재택 중인 직원들 사이의 업무 소통을 돕는 기술이나 서비스도 더 많아졌다. 플로렌스헬스케어의 지아 가네시 인사·문화 담당 부사장은 “임원들은 직원이 자기 눈앞에 있을 때 더 잘 통제한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근무 체제에 만족하는 노동자 입장에선 ‘더 자주 나오라’는 새 정책이 달가울 리 없다. 애플의 인공지능 머신러닝 총책임자였던 이언 굿펠로는 올해 5월 애플의 사무실 복귀 기조에 반발하며 전 직장인 구글로 이직했다. 미국의 채용컨설팅 업체 로버트하프 인터내셔널의 5월 조사에 따르면 ‘사무실로 돌아오라고 하면 그만두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노동자가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아이가 있거나(55%) 밀레니얼 세대일수록(65%) 높았다. 사무실 복귀로 인해 발생하는 출퇴근 시간과 비용을 임금에 반영해달라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들은 이에 맞춰 ‘당근’을 내놓고 있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경제학)는 <비비시>(BBC)에 “많은 회사가 이중임금 체계로 옮겨가고 있다”며 “완전히 원격근무를 하는 이들의 임금은 그대로 두는 대신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들의 임금을 5∼10% 올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금은 회사가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를 상징한다”며 “만약 회사가 대면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강조하고 싶다면 임금 인상은 유용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별도의 통근 수당을 지급하거나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양질의 식사가 노동자들을 사무실로 돌아오게 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지난달 17일 보도했다. 미국 인적자원관리협회(SHRM) 조사에 따르면 간식과 음료를 제공한다고 응답한 기업의 비중은 2019년에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지만 올해 2월엔 절반을 넘어섰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맷 슈밋은 “내가 점심값을 내는 날에는 12명 가운데 8명 정도가 사무실로 출근한다”며 “조금 더 일찍 이런 정책을 시행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식재료값이 크게 오른 상황이어서 식사 제공은 특히 매력적인 유인책이 되고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사무실로 다시 나오라’는 기업의 요구에 더 민감한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다. 재택근무는 여성들에겐 ‘양날의 검’이었다. 꾸밈 노동이 줄고, 통근 시간이 절약되면서 개인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남성이 많은 직군에서 일하던 여성에겐 독립된 업무 공간이 보장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기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유연한 근무로 가사노동·육아노동 부담이 더 늘었다.
하지만 여성들이 재택근무를 더 선호한 것은 사실이다. 집안일과 육아를 더 많이 감당해야 하는 여성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택근무가 성별 분업 강화를 부채질한 셈이다. <블룸버그>는 “남성들은 (재택근무를 통해) 유연성이 가능할 때에도 이를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학술지에 실린 논문 ‘재택근무제도 사용이 근로자의 시간 사용에 미치는 성별효과 연구’를 보면 남성 재택근무자의 92%는 재택근무 뒤에도 가사노동 시간에 변화가 없다고 답했지만, 여성의 경우는 37%가 가사노동 시간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여성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수면 시간도 줄어든다.
여성과 유색인종 노동자는 가사노동 부담과 인종차별 등으로 남성과 백인보다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백인 이외 인종도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직간접적인 인종차별 때문이다. 기업들이 사무실로 나오는 이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 그로 인한 임금 격차가 생길 수 있다. <비비시>는 “여성과 소수자들은 전체 혹은 일부 원격근무를 더 선호하는데, 임금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노동자를 위주로 인상될 것”이라고 했다.
사무실 복귀 흐름이 노사 관계나 임금 체계 등에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노동자를 사무실로 끌어내려는 ‘당근’ 역시 일시적 조치로 끝날 수 있다. 미국의 8월 실업률은 3.7%로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전달(3.5%)보다 다소 올랐다. ‘노동자 우위’로 과열됐던 고용시장이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니컬러스 블룸은 “사무실로 나오는 노동자들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혁명적이기는 하지만, 이는 우리가 팬데믹에서 포스트 팬데믹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임금 인센티브는 5년 뒤엔 사라질 것이다. 기업들이 완전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사람을 뽑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