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슬 팬들이 지난해 10월7일(현지시각) 영국 타인위어 뉴캐슬 세인트제임스파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구단 인수를 축하하며 사우디 국기를 흔들고 있다. 뉴캐슬/A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스포츠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를 이용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을 사들이더니 미국프로골프(PGA)에 대항하는 LIV 인비테이셔널을 출범했다. 최근에는 전통 스포츠를 넘어 이(e)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대대적으로 늘리고, 엔씨소프트·넥슨 주식을 3조원 넘게 사들이는 등 게임업계에 대한 직접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사우디가 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며 곳곳에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게리 호프만 프리미어리그 회장은 사우디의 뉴캐슬 인수 승인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미국프로골프는 최근 LIV에 출전한 선수들을 퇴출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대표적인 이스포츠 리그인 리그오브레전드 유럽챔피언십(LEC)은 사우디와 파트너십을 맺었다가 팬들의 반발로 인해 파기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이 끊이지 않는 건, 사우디 왕가가 ‘스포츠 워싱’을 하고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스포츠 워싱은 스포츠와 화이트 워싱(부패, 추문 등으로 인한 악평을 지우는 일)의 합성어로 국가, 기업, 단체 등이 스포츠를 이용해 각종 문제를 은폐하고 이미지를 세탁하는 일을 뜻한다. 사우디는 국내 각종 인권 문제를 비롯해 언론인 살해 등 범죄 혐의를 숨기기 위해 스포츠를 악용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스포츠 워싱이란 말은 비교적 최근인 2015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실 스포츠 워싱과 유사한 사례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나치 독일 치하에서 열린 1936 베를린올림픽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대회를 파시즘 선전을 위해 악용했다. 전두환 정권이 유치해 노태우 정권이 개최했던 1988 서울올림픽도 대표적인 스포츠 워싱 사례로 꼽힌다.
올해는 특히 스포츠 워싱 논란이 많은 해다. 중국,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월 “베이징겨울올림픽으로 시작해 카타르축구월드컵으로 끝나는 2022년은 잔인한 인권 기록을 은폐하려는 권위주의 정권에게 좋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축구 팬들이 지난 12일(현지시각) 카타르 도하에 있는 2022 카타르월드컵 카운트다운 시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도하/EPA 연합뉴스
다만 스포츠 워싱이란 용어가 스포츠계 패권 싸움에서 서구 국가와 자본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이미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성세력이 오일머니로 무장한 신흥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인권 문제를 핑계로 삼는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서구에서도 수많은 스포츠 워싱 사례가 있는데, 이런 비판은 오로지 중동이나 아시아 국가들에만 향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스포츠 워싱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보다 엄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이먼 채드윅 프랑스 스키마 경영학교 교수(스포츠경제학)는 <유에스에이투데이>에 “스포츠 워싱이란 용어가 대중화되기는 했지만, 학문적 연구는 부족하다”라며 “이 용어가 중동이나 아시아 국가에 대해 너무 자유롭고 단순하게 사용된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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