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지진 피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 동부 팍티카주에서 22일 건물이 무너져 내린 모습을 주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모든 곳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과 우리 가족이 진흙 속에 갇혀 있다.”
아프가니스탄 남동부 산악 지대 팍티카주에서 규모 5.9 강진이 일어난 다음날인 23일. 가까스레 구조돼 주도인 샤란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22살 아룹 칸은 <아에프페>(AFP) 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지진이 22일 새벽 1시24분께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가 순식간에 무너진 건물 아래 파묻힌 것으로 보인다. 팍티카주 주민 무히불라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숨진 이들은) 피를 흘리거나 뼈가 부러지지도 않았다”며 “희생자 대부분이 (잔해에 깔려) 질식해 숨졌다”고 말했다.
22일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팍티카주 샤란에서 주민들이 지진 희생자를 위해 헌혈을 하려고 병원 앞에서 줄을 서 있다. AFP 연합뉴스
사람들은 폭우가 퍼붓는 가운데 무너진 돌무더기 속에서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제대로 된 구조 장비도 없어서 손으로 땅을 파헤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현장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면, 한때 집이었지만 지금은 돌무더기로 변한 현장에서 구조대가 조심스럽게 무너진 벽을 붙잡고 걷고 있다.
오랜 내전과 식량 부족으로 신음하던 아프간 국민들은 이번 지진으로 더욱 큰 어려움에 처했다. 모하메드 아민 후자이파 팍티카주 정보문화국장은 <아에프페>에 사망자가 최소 1000명이 넘고 부상자만 1500명 이상이라며 “사람들이 무덤을 파고 또 파고 있다”고 말했다. 흙더미에 깔린 주검들을 수습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이미 아프간 인구 절반 가량인 2000만명이 굶주리는 상태에서 이번 지진까지 겹치며 식량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라미즈 알라크바로프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 아프간 담당관은 지진 당일인 22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와 카불을 연결한 화상 기자회견에서 “거의 2000채의 주택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에서 가족 구성원이 최소 7~8명이고, 한 집에 여러 가족이 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현장에 있는 유엔 구조팀에) 잔해 밑에 깔린 사람들을 구해낼 특수 장비가 없다. 아프간 당국(탈레반 정부)에 의존해야 하는데, 구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 날씨도 구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지진이 발생한 아프간 남동부 팍티카주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산악 지역으로 고도가 높다. 6월에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눈이 오는 경우도 있다. 구조가 시급히 이뤄지지 못하면 잔해에 깔려 있는 이들이 저체온증 등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22일 대규모 지진이 난 아프가니스탄 팍티카주의 가얀 마을에서 희생자를 싣은 구급차가 지나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알라크바로프 담당관은 “구호 물품, 의료 지원, 피난처 제공뿐 아니라 수인성 전염병도 예방해야 한다. 이런 질병이 창궐하는 것은 정말, 정말 반갑지 않은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유엔 등 국제구호단체들은 팍티카주의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구호 인력을 급히 파견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텐트·담요 등 방한용품, 식수·식량·위생용품, 심리치료를 위한 프로그램이 즉각 필요한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도 서둘러 의약품과 구호물품 등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는 유엔식량계획, 유엔난민기구,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관계자들이 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에 따르면, 아프간 국방부는 이날 헬리콥터 5대와 구급차 45대를 현장에 파견했다. 또 의료지원팀을 급히 팍티카주 가얀 마을에 투입했다. 세계보건기구 아프간지부는 이날 트위터에 “피해지역으로 의료물품 9.8t을 운송하는 중이다. 생명을 구하고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 인력도 투입됐다”고 말했다. 유니세프도 현장에 부상자 회복을 위한 보건영양팀을 파견했다고 전했다. 모하메드 아요야 유니세프 아프간 대표는 “탈레반이 유니세프에 지원을 요청했다”며, 구호 인력을 현장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이후 정권을 잡고 있는 탈레반 당국도 국제사회에 손길을 내밀고 있다. 탈레반 고위 관리인 아나스 하카니는 트위터에 “정부는 능력 범위 안에서 (최대한) 일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원조기관들도 비참한 상황에 있는 우리 국민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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