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에서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오상과 대담하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AP 연합뉴스
재임 시절 ‘친러시아’라는 평가를 받아온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퇴임 후 첫 공식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메르켈 전 총리는 7일 베를린 도심의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에서 열린 대담 행사에서 러시아가 일으킨 이번 전쟁에 대해 “야만적이고 국제법을 무시한 불법 침공으로 어떤 명분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권을 무시하는 잔혹한 공격”이라면서 “독일, 유럽연합(EU),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요 7개국(G7)과 유엔(UN)의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 유럽연합이 단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독일 아우프바우 출판사와 베를린 앙상블 극단이 기획한 이번 대담은 지난해 말 총리직을 내려놓은 메르켈 전 총리의 연설문 모음집 출간을 기념해 열렸다. 메르켈 전 총리 입장에선 6개월 만에 대중 앞에 얼굴을 내민 공식 행사였다. 메르켈 전 총리는 재임 시절 푸틴 대통령과 자주 만나는 등 경제 중심의 실용적인 대러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강한 반대에도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적극 밀어붙였다. 올라프 숄츠 현 총리는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이 이뤄진 직후 이미 완공된 이 관의 개통을 보류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자신이 재임 기간 펼쳤던 대러 정책은 옹호했다. 그는 “푸틴이 무역을 통해 변할 것이라 생각한 것은 절대 아니다. 정치적 화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경제적 유대를 갖는 것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그것(내 정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과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중국처럼 러시아는 너무 큰 나라라며 “우리의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7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에서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오상과 대담을 하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AP 연합뉴스
그러면서도 숄츠 총리의 강경한 외교 정책에 대해선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메르켈 전 총리의 ‘대연정’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숄츠 총리는 이번 전쟁이 시작된 뒤 독일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 1.53%에서 2%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또, 만성적 자금 부족에 시달렸던 독일 군대를 현대화하는데 13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힘은 푸틴이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라며 이 결정에 공감을 표했다.
지난해 12월 30년의 정치인 생활을 내려놓은 메르켈 전 총리는 은퇴 후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좀처럼 언급하지 않아왔다. 그는 “이 업무 저 업무 돌진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북유럽 발트해 해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산책하고 독서하며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많은 사람들처럼 울적함을 느꼈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