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오른쪽)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30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연합의 러시아 석유 수입 금지 합의안 등을 밝히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이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90% 줄이기로 30일(현지시각) 합의했다. 이 합의는 원유 수입을 완전 중단하려던 애초 계획보다 후퇴한 것이지만, 러시아에 적어도 한해 100억달러(약 12조3천억원) 정도의 손실을 입힐 것으로 추산된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 첫날 회의 뒤 회원국 정상들이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미셸 상임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밤 러시아에 대한 6차 제재안에 정상들이 합의했다”며 “이 합의는 당장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의 75%에 영향을 줄 것이며 연말까지는 수입이 90%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셀 의장은 회의 뒤 기자 회견을 통해 “우리는 러시아 전쟁 기계를 멈추고 러시아군에 대한 자금 투입을 차단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합의가 “주목할 만한 성과”라며 “우리가 강하고 확고하며 억세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6월1일까지는 6차 제재안에 대한 법적 승인 절차를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애초 러시아 원유 수입을 올해 연말까지 전면 금지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헝가리의 반대에 부닥쳐 송유관을 통한 수입은 당분간 허용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에 따라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는 지금처럼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입할 수 있게 됐다. 폴란드와 독일은 송유관을 통한 원유 수입도 연말까지 중단할 계획이다. 헝가리는 송유관이 차단될 때를 대비한 원유 대체 공급 방안도 회원국들로부터 보장받았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트위터를 통해 “최대한 빨리 러시아에 대한 가스, 석유, 석탄 의존을 단계적으로 줄여가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에너지 절감, 화석연료 수입처 다변화, 재생 에너지에 대한 대규모 투자, 혁신펀드 등에 대한 금융 지원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유럽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 가운데 3분의 2를 유조선을 통해 들여오고 있으며, 나머지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수입하고 있다. 유럽이 지난해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원유는 하루 229만배럴 정도였다.
<블룸버그>는 유럽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이 3분의 2 줄면 러시아가 아시아 등 대체 수출처에 할인 판매하는 데 따른 손실이 한해에 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도 러시아는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34달러 정도 낮은 가격에 아시아에 원유를 팔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유럽연합의 이번 6차 제재안에는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러시아 기업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일부 인사와 우크라이나 부차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군인들, 러시아군에 장비를 납품하는 기업 등을 제재 명단에 추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31일 회의에서는 철도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지원 방안 등 식량 안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하일 울리야노프 국제 기구 담당 러시아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는 원유를 공급할 다른 수입처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