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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대러시아 제재 동참 않는 인도…쩔쩔매는 미국, 왜?

등록 2022-05-09 09:31수정 2022-05-09 09:40

[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우크라 전쟁의 ‘예외적 존재’ 인도

서방이 적극적 대러 제재 펴지만
인도는 되레 헐값에 러 석유 수입
중국 대처에 인도가 필요한 미국
‘인도 피로증’ 있어도 속수무책
2019년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맨 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9년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맨 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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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가장 주목되는 행보를 보이는 나라가 인도다.

인도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뿐더러, 그 제재가 가장 노리는 러시아의 석유 등 에너지 수출 봉쇄에 구멍을 내고 있다. 인도는 지난 3월 러시아와 적어도 20% 할인된 가격, 약 30달러나 싼 값으로 석유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석유는 2600만배럴로 지난해의 수입량보다 많다. 서방의 입장에서 더 심각한 것은 인도와 러시아가 루피-루블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서방의 금융제재에 구멍을 내는 데서 나아가 달러 체제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시도다.

‘각자도생’ 인도에 냉가슴 앓는 미국

대미 전선에서 러시아가 절실한 중국보다도 인도가 러시아에 대해 더 적극적인 행보를 하는 것에 미국은 곤혹스러운 냉가슴만 앓을 뿐이다. 대러시아 제재를 기획실행하는 책임자인 달립 싱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지난 3월31일 인도 뉴델리를 방문해 “제재를 피하거나 메꾸려고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나라들에는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인도의 한 관리는 “그런 말은 외교에서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놀라울 뿐”이라고 반발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 석유를 수입할지는 인도 등 각 나라들의 결정”이라며 인도에 대한 경고는 결코 없었다고 해명했다.

미국이 인도에 쩔쩔매는 직접적인 이유는 러시아보다도 더 위협적 경쟁국인 중국에 대처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쿼드 체제에서 인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세계 지정 질서의 세 축인 미국-중국-러시아 관계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독자적인 입지가 갈수록 커지는 것이 근본적인 배경이다.

인도가 위치한 인도아대륙의 북쪽은 아라비아해 연안에서 시작되는 산맥이 북동쪽으로 뻗으면서 힌두쿠시산맥, 파미르고원, 카라코람산맥, 히말라야산맥에 이어 동쪽 벵골만 연안의 라카인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쪽으로는 아라비아해와 벵골만이 둘러싼다. 이런 지리적 조건으로 인도아대륙은 유라시아 대륙과 절연되는 등 일종의 ‘고립된 섬’이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는 통로는 서쪽의 산맥이나 사막, 황무지 지대를 넘어오는 것인데, 그 주요 통로가 카이바르 고개 등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잇는 통로다. 여기를 통과하면, 인더스강 유역과 갠지스강 유역 등 인구 중심지인 북인도 평원으로 이어진다.

인도아대륙은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 그곳을 통과해서 장악한 무슬림 세력의 통치를 받았다. 근대에 들어서는 영국이 바닷길로 와서 인도아대륙 전체를 장악했다. 이런 점에서 인도에 지정적인 과제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안보에서 사활적인 북서쪽 지역을 장악해 안정화시켜야 한다. 둘째, 인도양에서의 세력 구축이다. 인도인들은 인도양을 통해서 동아프리카나 동남아로 진출했다.

영국의 식민통치가 종식된 뒤 인도아대륙은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과 힌두 국가인 인도로 나눠졌다. 인도 입장에서는 안보의 사활지대인 북서쪽에 파키스탄이, 동쪽의 인구 중심지인 벵골에도 무슬림 국가 방글라데시(독립 전에는 동파키스탄)가 들어섰다. 파키스탄과는 4차례의 전쟁을 치르는 등 인도에는 최대의 안보 사안이다. 물러난 영국을 대신해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 역시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해양 세력이었다. 인도에는 미국 역시 영국과 별로 다르지 않은 세력이었다.

인도로서는 파키스탄이 있는 북서 지역을 제어하는 한편 인도양에서 패권적인 해양 세력의 존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냉전 시대 미국과 패권을 겨루던 소련과의 관계 증진이 인도에 해법이 됐다. 소련은 파키스탄을 북쪽에서 견제해줄 뿐만 아니라 인도양에서 인도를 직접 위협하는 해군력도 없었다.

인도와 소련은 파키스탄 및 중국 문제로도 더 긴밀해졌다. 미국은 인도·소련의 밀착을 견제하려고,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을 지원했고, 중국 역시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증진시켰다. 인도는 티베트 및 국경 문제로 중국과 전쟁까지 벌여서, 소련과의 관계가 더 절실해졌다.

이 과정에서 인도는 미국에 대한 역사적 불신이 있다. 1960년대 인디라 간디 당시 총리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비난하자,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은 매달 해오던 인도로의 식량지원을 재고하기도 했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두고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파키스탄을 지원했다. 소련의 아프간 전쟁 때 미국은 파키스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아프간에 친파키스탄 세력이 커지는 데 협조했고, 이는 결국 현재의 탈레반 정부로 귀결됐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미-인 관계는 역사적 전기를 맞기는 했다. 인도로서는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세력으로 커지자, 미국과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시작된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은 조지 부시 행정부 때 인도의 추가적인 핵 개발을 미국이 지원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결국 인도는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쿼드 체제에 한발을 걸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대중국 전선에서 가장 비중 있는 새로운 세력을 초대하는 문턱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인도의 헤징 외교와 줄타기 정책

하지만 인도가 전통적으로 취해온 주요 열강에 대한 헤징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음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인도는 냉전 시대에는 비동맹 노선으로, 냉전 이후에는 미·중·러 삼국 사이에서 줄타기와 등거리 외교를 근본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인도는 미-중-러 사이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유지하는 한편, 결코 어느 한 나라가 인도아대륙에 우월적인 영향력을 투사하지 못하게 하는 지정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관계는 인도에는 당장의 국익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세력 균형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둔 미-인 관계는 “모두 말뿐이고, 보여주는 게 없다”는 워싱턴의 ‘인도 피로증’이 있다고 스팀슨센터의 남아시아국장인 사미르 랄와니는 지적했다. 미국이 의도하는 ‘반중국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인도·태평양 지역에 확산시키는 것은 인도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인도 고위층의 인식을 미국 지정학자 월터 러셀 미드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전했다. 이른바 “얼버무리는 세력 균형책”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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