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수잔이 폴란드 프셰미실 기차역에서 교통편 나눔을 알리는 팻말을 들고 있다. 수잔 배우자 제공
프랑스에 사는 캐나다인 수잔(58)은 7일 차로 19시간, 무려 1958㎞를 달려 폴란드 서부 국경도시 프셰미실에 도착했다. 일주일 넘게 계속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을 텔레비전으로만 지켜보기 힘들어서였다. 차에 가득 실어온 의약품·음식·옷·담요 등을 프셰미실 안에 있는 난민 쉼터에 내려놓고 바로 기차역으로 갔다.
수잔은 그곳에서 프랑스 인근 나라로 동행할 난민을 찾아 나섰다. ‘여성과 어린아이에게 무료 교통편을 제공합니다’라고 적은 팻말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탈리와 두 아이들이 다가왔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촌이 있는데 함께 갈 수 있을까요?” 나탈리는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빈니차에서 왔다고 했다.
“물론이죠!”
수잔은 나탈리 가족을 차에 태웠다.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 나탈리도 아이들도 힘들어하더라고요. 이들이 쉴 수 있도록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멈춰 호텔을 잡았습니다. 이틀 쉬고 나서 나탈리를 사촌 집에 데려다줬어요. 정말 고마워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말했죠. 입장을 바꿔본다면 아주 작은 노력일 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요.”
이날 프셰미실 기차역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마주쳤던 수잔과 13일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다시 한번 연락이 닿았다. 수잔에게 왕복 4천㎞(서울~부산을 네번 왕복하는 거리다)를 달려 우크라이나 난민을 도운 이유를 물었다. 수잔은 프랑스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배우자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했다. 올해 초가을쯤 배우자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를 찾아갈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전쟁이 터졌다.
수잔의 차를 타고 빈으로 가던 중 나탈리가 수잔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나탈리의 아들, 딸이 고단했는지 곤히 잠들어 있다. 수잔 제공
수잔은 2박3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나탈리와 가족에 대해 잘 알게 됐다. “나탈리는 두 아이를 키우는 아주 강한 싱글맘이에요. 아들 드미트리는 여덟살, 딸 카샤는 다섯살이에요. 나탈리는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84살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났다고 합니다.” 나탈리의 노모는 집에 남아 폴란드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힘이 닿는 데까지 나탈리를 돕고 싶어요.” 수잔과 나탈리 가족은 정이 많이 들었다. 수잔은 지금도 나탈리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수잔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나탈리는 빈 난민센터에서 임시 거주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전쟁은 때로 뜻밖의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프랑스에 사는 수잔(왼쪽), 그리고 우크라이나 빈니차에서 피란을 온 나탈리와 그의 아들이 함께 빈에 도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잔 제공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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