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제재로 러시아의 채무 불이행이 우려되는 가운데 9일(현지시각) 수도 모스크바에서 시민들이 현금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기업인 등을 무더기로 제재 대상에 추가하고, 협력국인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금융 제재를 단행했다. 세계은행은 두 나라가 경제 제재로 채무 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맞을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은 이날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 16명과 의원 등 160명을 새로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추가된 제재 대상에는 러시아 국적기 아에로플로트의 미하일 폴루보야리노프 최고경영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사위인 알렉산드르 비노쿠로프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제재 대상은 862명과 53개 기관으로 늘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해양 기술 수출을 금지시키고 러시아가 금융 제재를 피하기 위해 암호화폐(가상자산)로 거래하는 것도 막기로 했다. 또 벨라루스 중앙은행과의 거래를 금지시키고 벨라루스개발은행 등 3개 벨라루스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시키기로 했다.
유럽연합 회원국 지도자들은 10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만나 러시아 석유·가스·석탄에 대한 단계적 수입 금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체 회원국에 일률적인 수입 금지 완료 시한을 부과하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로이터>가 전했다. 회원국 가운데 독일·이탈리아·헝가리·오스트리아 등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아주 높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수입처 다변화 등을 통해 올해 연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3분의 2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은행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디폴트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카먼 라인하트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로이터>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분명한 디폴트 영역에 들어섰다”며 “신용평가기관들이 아직 디폴트 상태로 규정하지 않았지만 거의 그 단계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계가 지금까지는 제한적인 영향만 받고 있지만, 유럽 금융기관들의 러시아 관련 자산 규모(익스포저)가 현재 추정치보다 많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결제은행 자료에 따르면, 외국 은행들의 러시아 관련 익스포저는 1210억달러 규모이며 대부분은 유럽 은행들에 몰려 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라인하트 이코노미스트는 “금융기관들의 자본 상태는 양호하지만 대차대조표가 불투명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러시아 민간 부문의 위험을 특히 걱정했다. 러시아 기업들이 외국에서 발행한 회사채는 1천억달러 규모다.
러시아는 16일까지 2건의 국채 이자 1억7천만달러를 지급해야 하는데, 제재 여파로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자 지급 시한을 넘기면 한달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지며, 이 또한 지키지 못하면 최종 디폴트 처리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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