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 크라스노야스크 지역 유전의 2015년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8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며 향후 중국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제재가 원유·천연가스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중국이 남는 물량을 적극 수용할 경우 제재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면, 중국이 판로가 줄어든 러시아의 원유를 받아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2004년부터 러시아와 천연가스 도입 협상을 진행했지만, 가격 문제 등으로 계약을 맺지 못했다. 낮은 가격을 원하는 중국과 국제 시가에 공급하려는 러시아 간의 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졌기 때문이다.
2014년 러 제재 받자…중, 시가보다 싸게 계약
하지만, 크림반도 사태로 상황이 변했다. 서구가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줄이자, 중·러는 시장가보다 10% 정도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국제 시가는 천연가스 1000㎥당 380달러였는데, 350달러 선에 계약을 맺은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 2018년까지 가스관을 놓고 30년 동안 연간 천연가스 380억㎥를 공급한다는 내용으로 총 계약금이 4000억 달러(494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중국은 10년 협상 끝에 가격을 낮추는데 성공했고, 서구의 제재에 몰린 러시아는 안정적인 장기 계약처를 확보할 수 있었던 ‘윈윈’ 계약이었다. 양국 관계는 이때를 계기로, 정치·외교 분야에서 경제를 포괄하는 매우 탄탄한 협력 관계로 발전해 간다.
미국의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 조처를 형상화한 이미지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8년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에서도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게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은 원유와 천연가스의 각각 72%와 44%를 수입에 의존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중국의 발등에도 불똥이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등의 금수 조처를 내림에 따라 중국이 이번에도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원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판로를 잃은 물량을 중국이 받아주면 한숨 돌릴 수 있다.
중-러 에너지 협력, 우크라 침공 전 이미 약속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협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20일 전인 지난달 초 이미 시작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막대한 에너지 협력을 약속했다. 러시아가 중국에 연간 10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향후 10년 동안 총 1억t의 원유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2014년 계약분까지 합치면 러시아가 중국에 보내는 연간 천연가스 공급량은 480억㎥에 달한다.
미국은 경계감을 감추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5일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과 통화에서 “어느 나라가 자유와 자결권, 주권이라는 기본적 원칙을 옹호하는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며 중국의 제재 동참을 에둘러 압박했다. 하지만, 왕이 부장은 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며 서방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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