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베이징/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격 결단’하면서, 전세계의 이목이 자연스레 베이징의 향후 행보에 집중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동안 국제질서를 규정해온 것은 미국·중국·러시아 ‘세 대국’의 삼각관계였다. 미국과 치열한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노골적인 ‘침략 행위’에 눈감으면서 러시아 편에 확실히 설지, 자제를 촉구하는 등 세계의 움직임에 동참할지는 향후 세계 질서의 향방을 가름하는 데 ‘결정적 변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는 동안 중국은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미국의 책임을 부각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국외에 대변하는 영문지 <글로벌 타임스>는 23일 “어느 나라든 정당한 안보 우려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의 발언을 인용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강도 높은 봉쇄를 지속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계속 동진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압박을 강화하는 식으로 안보 요구를 실현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미국 쪽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한 셈이다.
물론, 중국이 그것만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국가의 주권과 독립과 영토는 보전돼야 한다는 유엔(UN) 헌장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해왔다. 러시아의 안보 우려는 인정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주권도 보장돼야 한다는 이중적 자세를 보인 것이다.
서구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런 입장을 어정쩡하다고 해석해왔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가 아직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는 중국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안이었다.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은 홍콩과 신장위구르의 인권 침해 문제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놓고 서구의 비판이 이어질 때마다 중국이 꺼내는 ‘전가의 보도’였다. 미국에 맞서는 중-러 협력을 염두에 두면서도, 중국이 핵심적 이익이라 말해온 중요 현안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된 뒤 중국의 입장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5일 오후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냉전의 정신을 버리고 모든 국가들이 정당한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중시하고 존중해 교섭을 통해 균형 잡히고, 효과적이며, 지속가능한 유럽의 안전보장체제를 형성해야 한다”며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교섭의 필요성을 밝히며 러시아의 무력행사에 대해선 은근히 반대 뜻을 밝힌 셈이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것이)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의 25일 새벽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둘러보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지금까지 중국이 보인 태도들을 종합하면, 중국이 러시아의 편에 서긴 하겠지만 무력행사 등 극단적 행동에는 선을 긋는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서구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신냉전의 도래’로 규정하며 미·유럽 대 중·러 간 대결이 극심해질 수 있다고 의미 부여를 하는 반면, 중국 정부와 매체들은 이 사태를 지역 분쟁으로 의미를 축소하며 ‘냉전적 사고를 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중국은 25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규탄 결의안에 대해 반대가 아닌 기권표를 던졌다. 중국은 앞선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도 이를 승인하지 않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었다.
중국 전문가들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세계화센터 왕후이야오 회장은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중국은 당분간 미·러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국방·외교 분야에서 미국과 힘겨운 대결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자국이 직접 관여되지 않은 심각한 갈등 상황에 또 발을 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과 다르게 유럽과는 우호적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고 보고 관계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맹주 독일과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신호등 연립 정부’와도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은 1949년 건국 이래, 한국전쟁(1950~1953년)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채 관망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대만 등 자국으로 간주하는 영토에 대해서는 ‘핵심 이익’으로 표현하며 강력히 대응하지만, 다른 나라의 전쟁은 그 나라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중국식 고립주의 입장을 유지해왔다. 지난해 8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당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아프간에 대한 내정 간섭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구에선 중·러의 협력 강화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도 4천억달러(약 481조8천억원)의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체결해 서구의 경제제재 효과를 상쇄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 전에도 만나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늘리는 장기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두 나라는 20년 기한의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을 2021년 연장하는 등 냉전 이후 30여년 동안 이어져온 미국식 자유주의 국제질서(미 일극체제)를 자신들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다극체제’로 전환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중국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러시아는 ‘대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두 대국 간에는 갈등 요소도 적지 않다. 유라시아 대륙 동·서쪽의 맹주로서 수천㎞의 국경을 맞대며 갈등해온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양국 간 영토 분쟁은 2000년대에 해소됐지만, 옛 소련의 영토였던 중앙아시아에 일대일로(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국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건설 계획)를 앞세운 중국의 진출이 이어지며 소리 없는 처절한 기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공동의 적인 미국에 맞서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흉금을 털어놓는 동맹국이 되기는 어려운 관계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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