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벨라루스 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는 러시아 군 장병과 병력들이 철도를 이용해 벨라루스에 도착하고 있다. 벨라루스 국방부가 18일 배포한 자료 사진이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연합훈련을 이유로 이웃 벨라루스에도 병력을 파견하며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현실화되자, 미국이 황급히 러시아와 외교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곧바로 대면 회담에 나서기로 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등 영구 주둔을 모색한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18일 전화 브리핑을 통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위기를 놓고 회담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은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 위기를 완화할 조치를 취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적대와 위기에 기반하지 않은 관계를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적 해법을 추구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이 회견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 회담을 하고 우크라이나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대면 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모스크바는 미국의 외교적 노력을 환영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정부군 사이의 분쟁을 종식할 합의를 우크라이나가 “사보타주”하고 있다고 분쟁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겼다.
미국이 지난 9~13일 이뤄진 러시아와 연속 회담이 끝난 뒤 일주일이 못 돼 재차 러시아와 협의에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현실화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1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신들의 침공을 정당화할 ‘위장작전’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고, 이날은 “러시아가 언제라도 우크라이나에게 공격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고 믿는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나아가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에 맞서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벨라루스가 다음달 이뤄지는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의 핵무기 배치를 허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면, ‘우크라이나 위기’를 통해 서방에 대한 위협의 강도를 높일 수 있다. 그동안 나토가 동유럽 회원국에게 군사력을 배치해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했는데, 이번엔 나토가 당할 차례라는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이 당국자는 최근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연합군사훈련을 위해 병력을 파견한 문제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수준을 훨씬 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위장해 벨라루스에 병력을 주둔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시엔엔>(CNN)이 보도했다. 방송은 한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탄약을 포함해 대전차 미사일 방공 무기, 방공 미사일 시스템 등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된다고 전했다. 사키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적 군사 조치가 가시화할 경우 러시아와 독일을 관통하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 사업 중단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 접근 차단 등의 카드도 여전히 테이블에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사업에 집착해 온 독일도 우크라이나 위기가 현실화되며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18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라브로프 장관과 만나 독일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값비싼 경제적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을 잠그는 최악의 상황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러시아가 요구하는 안전보장에 대해서 “유럽 모두에게 안보를 제공하는 상호합의를 이루기 위해 진지하게 대화할 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에게 대전차 무기들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캐나다는 소규모의 특수전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캐나다의 병력 파견은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무력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장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게 소규모 특수군 병력을 파견해 우크라이나 정부를 돕고, 캐나다 외교 인력 철수에 대비할 것이라고 캐나다 <글로벌 뉴스>가 보도했다. 캐나다 특수군사령부 대변인은 이 보도에 대해 공식 확인은 삼간 채 “2020년부터 우크라이나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고”만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