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점령지에서 숨어살아야 했던 유대인의 삶을 기록한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를 밀고한 이는 누구였을까.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전직 수사관 및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조사팀은 17일 안네 프랑크와 가족을 나치에 밀고한 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동료 유대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시비에스>(CBS)의 ‘60분’ 프로그램에서 밝혔다.
이 조사팀을 이끈 빈스 팬코크 전 연방수사국 수사관은 6년 간의 조사 끝에 암스테르담의 유대인이었던 아르놀트 반덴버그가 안네의 가족들을 밀고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조사팀은 안네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추적하기 위해 컴퓨터 알고리즘 등 최신 기법까지 활용했다.
반덴버그는 네덜란드 점령 시절 나치 정책에 협력하던 암스테르담의 유대인위원회의 회원이었다. 이 단체는 1943년에 해체됐고, 회원들도 수용소로 끌려갔다. 하지만, 반덴버그는 수용소로 보내지지 않았고 평소처럼 암스테르담에 살았다. 팬코크는 “반데버그는 자신과 부인이 안전하게 지내려면 자신이 접촉했던 나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해야만 했다”며 그가 안네 가족을 밀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네와 가족들은 네덜란드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아버지 오토의 회사 건물 다락에 2년 동안 숨어 살았다. 안네는 이 기간(1942년 6월~1944년 8월) 동안 자신과 가족들의 일상을 꼼꼼히 일기에 적었다. 하지만, 결국 나치 친위대 보안부(SD)에 발각돼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안네는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15살의 나이로 숨졌다. 네덜란드 경찰은 전후 안네 가족이 발각된 이유에 대해 수사했지만 진상을 밝혀내지 못했다.
조사팀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반덴버그가 밀고자였음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벤덴버그를 밀고자로 지목한 익명의 메모가 그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이 이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반덴버그는 1950년에 사망했다.
팬코크는 오토가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유대인이 유대인을 밀고해 수용소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 반유대주의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1947년 딸의 일기를 모아 <안네의 일기>를 출간했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은 방송 이후 성명을 내어 이번 조사 결과에 “감명 받았다”는 감상을 밝혔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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