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으로부터 차기 연준 의장으로 재지명된 뒤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에 제롬 파월(68) 현 의장을 재지명했다. 파월 의장과 함께 차기 의장 후보로 거명돼온 레이얼 브레이너드(59) 연준 이사는 연준 부의장에 지명됐다. 코로나19와 물가 상승이라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변화보다는 정책 연속성과 안정성에 무게를 둔 선택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나라가 지난해 일자리를 잃고 금융 시장이 패닉에 빠졌을 때, 파월의 변함없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시장을 안정시키고 우리 경제를 단단한 회복 경로에 올리는 것을 도와줬다”고 파월 의장에 신뢰를 표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 560만개 일자리를 창출했고 실업률이 예상보다 2년 빠르게 4.6%로 떨어졌으며 경제 성장 속도가 다른 선진국들을 능가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파월 의장 유임을 결정한 것은 현재까지의 경제 정책을 성공으로 자평하고 그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는 신호다.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진보파는 더 강한 금융 규제와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면서 파월 의장 교체를 주장해왔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파월 의장 손을 들어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월 의장의 독립성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왜 새로운 피를 선택하거나 연준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지 않느냐고?”라고 물은 뒤 “경제에 잠재력과 불확실성이 모두 막대한 이 순간에 우리는 연준에 안정성과 독립성이 필요하다. 파월은 내가 연준 의장에게 소중하다고 여기는 독립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인 2018년 2월 연준 의장에 취임한 파월 의장은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 속에 ‘제로 금리’ 등 과감한 통화 완화 정책을 펴서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
상원 인준 청문회를 원만하게 넘을 수 있다는 점도 파월 의장 재지명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파월 의장은 지난 2018년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지지(찬성 84, 반대 12)로 상원을 통과했으며, 이번에도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연준 의장 연임은 2018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재닛 옐런 의장을 교체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로 지켜져온 전통이기도 하다. 파월 의장은 상원을 통과할 경우 내년 2월 두번째 4년 임기를 시작한다.
파월 의장에게는 인플레이션 관리와 고용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2% 올라 31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업률도 나아지긴 했으나 취업자 수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420만명 적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대 고용 달성”과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의 균형을 잡는 것이 연준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파월 의장과 브레이너드 이사가 이를 이뤄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가족들, 특히 식품·주거·교통 같은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안다”며 “우리는 경제와 강력한 노동시장을 지원하고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의 수단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통화 완화 정책에 무게를 둔 ‘비둘기파’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은 통화 완화로 인한 수요 증가와 공급망 위기가 결합된 물가 상승이 미국의 최대 경제적, 정치적 과제로 떠올랐다.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경우 실업률이 높아지고 주가와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파월 의장은 2기 때 매우 다른 경제 환경에 마주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를 넘어) 3% 이상으로 지속된다면 파월 의장은 경기침체와 정치적 역풍 위험을 무릅쓰고 비둘기에서 매로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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