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중국-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 각국 정상들이 참여해 있다. EPA 연합뉴스
중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에서 5년 동안 178조원어치 농산물을 사주기로 했다. 미국의 대중 포위 전략에 맞서 적극적으로 동남아 끌어안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중국-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 내용을 발표했다고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 보도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거대한 국내 시장을 가진 중국은 앞으로 5년 동안 1500억달러(178조원) 어치의 농산물을 수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함해 아세안 국가들의 우수한 생산품을 더 많이 수입할 것”이라며 “아세안에 1000개의 선진 응용기술을 제공하고, 향후 5년간 아세안 청년 과학자 300명의 중국 방문 교류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언적 약속이긴 하지만 2020년 1월 중국이 미국과 1단계 무역합의를 맺으며 약속한 농산물 수입액인 320억달러(2년)를 네배 이상 웃도는 것이다. 시 주석은 또 향후 3년 동안 15억달러(1조7800억원) 상당의 개발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아세안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10개국이 모인 이 지역 대표적인 국가 연합체다. 지난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미얀마 군사 정권의 대표는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중국은 그밖에 중-아세안 자유무역지대 ‘버전 3’의 조기 가동 등을 통해 투자·무역 자유화를 제고하고, 디지털경제·녹색경제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또 높은 품질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건설 협력 강화도 제안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중국의 아세안 챙기기가 한층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9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끌어들여 대중 안보 동맹인 ‘오커스’를 출범시킨 뒤, 커트 캠벨 미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19일 “당장은 아니라도 아시아와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하는 등 확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미-중 경쟁이 점점 더 격하게 진행되며, 동남아 국가들도 머잖아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게 된 셈이다.
시 주석은 이런 상황을 의식한 메시지를 내놨다. 시 주석은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더더구나 대국이 소국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지역 평화의 건설자이자 수호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국제 및 지역 사안을 모두가 협의해서 처리하는 방식을 견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