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10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건국 기념일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타이베이/EPA 연합뉴스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신해혁명(1911년 10월10일) 110주년을 맞아 양국 지도자들이 정면충돌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조국(대만) 통일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하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전력을 다해 (현상 변경을) 막겠다”고 말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시 주석이다. 시 주석은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서 “완전한 조국 통일의 역사적 임무는 반드시 실현해야 하고 틀림없이 실현할 수 있다”며 “대만 문제는 완전히 중국 내정으로, 어떤 외부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이 출범한 신해혁명 기념일에 대만 통일 문제를 핵심 의제로 꺼내 든 것이다.
시 주석은 이날 “평화적인 방식의 조국 통일은 대만을 포함한 중화민족 전체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말해, 무력을 활용한 통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앞선 2019년 1월 시 주석은 “(통일을 위해) 무력 사용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하지 않겠다”고 말해 충격을 줬는데, 당시보다는 강도를 낮춘 것이다.
하루 뒤인 10일 대만해협 넘어 차이잉원 총통이 반격에 나섰다. 그는 이날 타이베이의 총통 관저 등에서 열린 건국 110주년 기념행사에서 “현상 유지가 우리의 주장”이라며 “현상이 일방적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설정한 길을 억지로 가지 않도록 우리는 국방력을 강화하고, 우리 스스로를 방어할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만 독립을 목표로, 최근 진행 중인 국방력 강화를 통해 중국과 대결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루 차이로 열린 양국의 기념행사장에는 신해혁명을 이끌어 중국과 대만 양쪽에서 존경받는 쑨원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렸다. 특히 대만은 신해혁명 기념일을 건국 기념일로 삼는 등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 중국의 건국 기념일은 10월1일로, 1949년 이날 마오쩌둥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출범을 선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아래 가운데)이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최근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세지면서 양국 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이달 1일부터 나흘 동안 전투기 등 총 149대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ADIZ)으로 날려 보냈다. 지난해 대만이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로, 추궈정 국방부장(국방장관)은 “최근 40년 새 최대 위협”이라고 평했다. 최근 중국군이 보낸 항공기들은 탐색이나 정보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하는 비행기가 아니라 대규모 폭격이 가능한 폭격기와 신호를 교란하는 전자전 항공기 등이다.
중국의 강도 높은 위협은 대만과 미국 등에 보내는 다목적 신호로 평가된다. 먼저 독립 분위기를 고취하며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는 대만에 대한 경고다. 대만은 지난달 중순 육해공군이 참여하는 ‘한광37호’ 훈련을 실시하는 등 중국의 공격에 대비해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은 또 내년 군사예산으로 사상 최대인 17조원을 편성하고, 미국으로부터 첨단 무기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대만을 비호하는 미국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며 대만이 양국 갈등의 ‘최전선’으로 부상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런 흐름이 이어져, 미국은 지난 8월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승인했고, 미군 특수부대와 해병대가 대만에서 최소 1년 이상 군사훈련을 위한 비밀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월스트리트 저널> 8일 보도로 공개됐다.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한 이래 존중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도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미·중은 ‘답 안 나오는’ 대만 문제로 대립을 이어가기보다 관계 관리 쪽으로 방향을 튼 모습이다. 시 주석은 이날 ‘무력 사용’ 언급을 자제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5일 ‘대만 합의’(크게 보아 ‘하나의 중국’ 원칙)를 지키겠다고 합의했음을 공개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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