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가 일본에서 판매하는 화장품에서 ‘미백’(美白)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백인과 백색 피부를 아룸다움의 중심에 놓는 것은 인종주의라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니레버가 일본시장에서 파는 피부 관리 브랜드 폰즈의 포장에서 ‘미백’과 ‘화이트’라는 표현을 없앴다고 11일 보도했다. 유니레버는 이달부터 이런 표현을 없앤 화장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백’ 또는 이와 비슷한 표현은 아시아시장에서 판매되는 화장품에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백색 피부를 강조하는 마케팅은 미의 기준을 백인으로 삼기 때문에 인종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 경찰 폭력에 사망한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마케팅 분야에 만연한 ‘인종주의 조장’ 표현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일본의 ‘미백’ 화장품시장 규모는 연간 20억달러(약 2조3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화장품시장과 화장품 업체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캐나다 칼턴대의 아미나 마이어 교수(사회학)는 “비백인이면서도 독특하게 흰 일본인들의 피부는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모방의 대상이 돼왔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말했다. 하지만 유니레버는 인종적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에 지난해 남아시아에서 판매하는 브랜드 ‘Fair & Lovely’(창백하고 사랑스럽다는 뜻)에서 ‘Fair’를 ‘Glow’(빛나다)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유니레버는 “우리는 모든 피부 톤을 관리하는 폭넓은 글로벌 피부 관리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존슨앤존슨, 로레알, 랑콤 등 경쟁사들은 ‘미백’이나 이와 비슷한 표현을 버릴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존슨앤존슨의 피부 관리 제품은 용기에 ‘약용미백’이라는 표현이 써 있다. 랑콤 제품은 “완벽하게 흰 아우라”라는 표현을 쓴다. 이 업체들은 소비자들이 ‘미백’을 꼭 피부를 희게 만들어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잡티를 없애거나 피부를 균질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주장한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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