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방탄차 안의 국제기구 직원을 발견하고 환호하는 학생들.
미군 철수와 탈레반 재집권이 현실화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사회의 재건 지원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금 진행되어야 할지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아프간을 지원하는 국제기구에서 3년 반 동안 일했던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아프간 상황을 깊이 알아갈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듯한 절망감에 잠식되곤 했었다. 그 끝 모를 피로감을 외면하고 나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왔지만, 그 후로 내게 무력감이 찾아왔다. 주변에서 큰 소리만 나도 몸이 먼저 테러로 인식해 불안에 떠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반년이 채 안 되어 사라졌는데, 무력감은 아주 오랜 시간 나를 갉아먹었다. 그 어떤 일에도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그 어떤 일도 충분히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세상에 중요한 업이란 존재하는 것이었을까? 이는 아프간을 떠나온 다른 많은 동료들도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종류의 무력감이다.
우리가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종류의 전쟁을 목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국제기구 직원으로서 불안한 정세의 국가에서 오랜 시간 개발협력 업무를 하게 되면 피할 수 없이 직면하게 되는 온갖 종류의 민낯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신념들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상황을 경험한 이후엔 이 세상 모든 것이 거짓으로 쌓은 탑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난 20년간 아프간엔 수천조원이 넘는, 어쩌면 비공식적으로는 경 단위로 세야 할지도 모르는 국제 원조가 쏟아졌다. 인도주의적 원조와 군사 훈련, 그리고 사회개발협력을 위해 들어온 이 국제 원조는 대부분의 대규모 원조가 그러하듯, 애초부터 어느 정도의 목표와 결론을 염두에 두고, 타임라인을 세워, 예산을 계산하고 필요한 정도의 돈이 필요한 만큼만 입금된 그런 종류의 원조가 아니다. 사실 아프간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원조는 정치적으로 계산되어 입금된 돈이다. 아프간의 상황에 공감하고, 치열한 토의 끝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나오는 원조라기보다는 정치적 함의가 많이 들어간, 미국과의 관계를 위한 우방국의 “동맹 비용” 차원의 원조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아프간 사회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의지를 지니고,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자는 많지 않다. 제대로 된 중·장기적 계획을 굳이 세우지 않아도 돈은 들어오기 때문이다. 2년에 한번씩 여러 국가에서 돌아가며 열리는 아프간 콘퍼런스는 그간의 원조 결과와 성취를 발표하고, 다음 2년간의 원조 규모를 확정 짓는다. 날조된 성과가 아니고서야, 완전히 붕괴된 사회에서 2년 안에 어떤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수 있겠는가? 콘퍼런스에 모인 공여국 정상 그 누구도 발표된 성과가 완전한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어차피 출연한 기금도, 앞으로 출연해야 할 기금도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정 비용이고, 발표된 자료를 토대로 각국 국회에 기금의 용처를 보고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너무나도 짧은 2년 주기의 콘퍼런스는 아프간 정부가 정말 보고를 위한 보고를 준비하는 것에 불필요하게 많은 여력을 쏟게 되는 문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2년 주기의 보고만 잘 넘기면 다음을 위한 돈이 약속되기에 그 누구도 중·장기 계획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시스템이 되어버린다.
아프간의 중·장기적 계획이 표류하는 동안 아프간은 돈이 물처럼 새는 곳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런데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큰 프로젝트일수록 프로젝트 비용이 우선 계산되고 그 비용에 맞추어 예산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산이 먼저 주어지고, 그 예산에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문제는 예산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 예산이 차고 넘치는 경우에서 발생한다.
201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콘퍼런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아프간 여성 인권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일례를 들어보자. 나는 아프간의 교과 과정 개혁과 관련한 워킹그룹에 참관한 적이 있다.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아프간 전역의 교과 과정 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넉넉하게 계산된 금액은 8천만달러, 기간은 5년이었다. 한데 그다음 미팅에서 교과 과정 개혁 기간을 3년 이내로 줄였으면 좋겠다는 대통령궁의 요청이 들어온다. 현 대통령의 임기 내에 사업을 완수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 프로젝트를 실제로 집행해야 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워킹그룹 내에선 비용을 아무리 늘려도 3년 이내에 아프간과 같이 분쟁 지역이 많은 나라에서 전 지역의 동시다발적인 교과 과정 개혁을 하기란 어렵다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날 오후 갑자기 한 공여 기관에서 아프간의 교과 과정 개혁을 위해 1억2천만달러의 기금을 출연한다는 뉴스를 낸다. 그리고 실무진이 모르는 단계에서 정치적으로 기금의 규모가 정해진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그다음 미팅에서는 체념한 모두가 3년 안에 1억2천만달러를 이용하여 교과 과정을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쥐어짠다. 사실은 8천만달러가 필요한 프로젝트에 4천만달러의 잉여 자금이 생겼고, 이를 두배는 더 빠른 속도로 소비해야 한다.
어떻게 되겠는가? 우선 아프가니스탄 시장 경제의 기틀이 망가진다. 현장에서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국제기구 인력들은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소소한 비용을 경제적으로 소비하기 위하여 따지고 흥정을 할 시간이 없다. 상인이 부르는 값을 치르고 빠르게 다음 업무에 임하는 것이, 돈은 많고 시간은 촉박한 프로젝트의 진척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돈을 넉넉하게 쓴다. 제대로 된 시장 경제에서라면 상인들은 마땅히 가격과 품질 경쟁을 거쳐 돈을 벌고 스스로의 경쟁력도 키워야 하지만 국제사회의 넉넉한 씀씀이를 경험한 이들은 더 이상 경쟁하지 않게 된다. 다만 어떻게 하면 외국인들과의 연줄을 만들어 자신의 사업에 돈을 쓰게 만들지를 고민한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해서 원조기구들로부터 한몫 잘 건지면 온 가족이 당분간 먹고살 걱정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상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품들의 질은 더 높아지지 않는다.
유럽연합(EU), 아프가니스탄 관계자들이 향후 아프간 원조 계획에 대해 서명하는 가운데,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가운데)이 서 있다.
이 상황이 지난 20년간 이어졌다고 생각해보라. 또 그간의 이러한 경험으로 쌓인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 자세가 어떨지 상상해보라. 그 와중에 테러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매년 꾸준히 수백의, 수천의 시민이 눈앞에서 죽어간다. 끔찍한 테러의 다음 사상자가 내 가족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넘쳐나는 액수의 국제 원조 부산물을 경험한 상황에서 이들은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키워서 장기적으로 고객을 모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대신 될 수 있는 대로 돈을 모아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돈을 많이 쏟아붓는다고 국가가 바로 일어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재건의 토대는 사람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다.
다시 교과 과정 개혁 프로젝트로 돌아와보자. 3년 이내에 1억2천만달러를 사용해야 하는 국제기구 요원들은 매우 바쁘고 치열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실제 성과는 좋지 못할 것이 뻔하다. 아프간과 같은 분쟁지역에서는, 34개 주 내의 421개 지역에 있는 모든 선생님과 매일같이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한다. 어쩌다가 몇주씩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우편과 책이 배달되는 데에 또 몇달씩 걸리기도 한다. 예상했던 5년 타임라인이 더 늘어질 수는 있지만, 그 시간을 줄이기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가능하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장 경제는 망가지고, 프로젝트는 완수되지 못하고, 시장의 사람들은 한탕주의에 빠진다. 부실한 국가가 탄생하는 배경이다. 다시 아프간 원조를 준비하는 국제사회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글·사진 송첫눈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