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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코즈모폴리턴] 환영 못 받는 존재, 이주민의 잠재력

등록 2021-07-15 16:13수정 2021-07-16 02:36

신기섭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국제부 기자로 느끼는 아쉬움 중 하나는 제3세계에 대한 기사는 굶주림이나 전쟁 같은 불행한 사태가 생길 때만 크게 취급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 언론뿐 아니라 전세계 뉴스 흐름을 주도하는 국제 뉴스통신사나 영어권 거대 언론사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엇비슷하다.

이 때문에 많은 독자는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빈곤과 굶주림을, 중동을 생각하면 종교 갈등과 테러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다. 보통의 독자가 제3세계에도 대도시의 세련된 생활 방식이나 유행, 첨단 정보기술이 있다는 걸 함께 떠올리기를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나마 제3세계가 겪는 어려움을 부각시키는 기사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의 부자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지원과 연대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그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제3세계의 어려움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분명하게 가르쳐줬다. 지금 전세계의 ‘델타 변이 대유행’은 제3세계의 대표 격이라고 할 인도가 지난 4~5월 겪은 극심한 코로나19 사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부자 나라들이 제3세계를 계속 외면하면, 요즘 남미 페루에서 번지고 있는 ‘람다 변이’가 ‘제2의 델타 변이’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제 세계는 외국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닐 만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3세계’라는 말에 비해 훨씬 더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 ‘이주민’이 아닐까 싶다. 이주민은 불편하거나 위험하거나 피해만 끼치는 존재로 취급된다. 이런 느낌은 이주민을 가끔씩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더욱 굳어진다. 식당이나 지하철 등에서 잠깐씩 마주치는 이주민을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주민에 대한 반감과 이를 둘러싼 갈등이 아주 심한 유럽에서 이런 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줄 만한 통계가 최근 나왔다. 유럽연합 통계국은 지난 7일 내놓은 자료에서 유럽연합 내 이주민의 학력이 원주민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2020년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 출신으로 다른 회원국에 사는 25~54살의 성인 중 대졸자가 전체의 35.6%에 달했다. 이는 자국에 계속 사는 원주민 중 대졸자 비율(36.7%)보다 단 1.1%포인트 낮은 것이다. 유럽연합 내 다른 나라에 정착한 이주민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 출신이며, 농업 등 육체노동에 많이 종사한다는 선입견을 깨주는 통계다. 많은 이주민은 ‘못 배우고 가난해서 부자 나라로 떠난 하층민’이 아닌 셈이다. 이 점은 유럽 외부에서 유럽연합으로 이주한 이들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 중 대졸자도 29.6%에 달했다. 이들의 다수가 가난한 제3세계 출신이라는 점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수치다.

한국인의 과거 이민 양상도 실제로는 이와 비슷했다. 1960년대 이후 미국 등으로 이민을 떠난 이들 상당수는 높은 학력의 중산층이었다. 오죽하면,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에서는 서울의 유명 대학 출신자들이 편을 나눠 경쟁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말들이 떠돈 때도 있었다.

이주민의 학력은 그들이 정착한 사회에 기여할 길을 함께 찾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유럽연합 통계국은 이 통계를 소개하면서 “이주민이 현지 사회와 통합을 이루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측면이 학력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고학력 이주민은 현지 언어를 더 빨리 습득할 가능성이 높고, 언어 문제만 해결하면 유능한 인력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사회에서 이주민을 편견 없이 바라봐야 할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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