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동차를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4일 친구에게 차를 빌려줬다가 이 차를 몰고 간 친구들이 벌인 살인사건의 공범으로 간주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20대 젊은이의 사례를 통해 공범을 실제 중죄를 저지른 범인과 똑같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미국의 독특한 법률을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2003년 3월 플로리다에 사는 당시 20세의 라이언 홀은 파티를 마친 뒤 친구에게 차를 빌려줬다.

이 친구는 다른 3명을 차에 태우고 대마초 거래업자의 집에 금고를 훔치기 위해 침입했고 이 과정에서 집 주인의 18세 딸이 이들 중 한명에 의해 숨졌다.

홀은 당시 현장에서 2㎞도 넘는 곳에 있었고 직접 살인에 가담하지도 않았지만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다.

이는 강도나 성폭행 등 중범죄를 통해 저질러진 살인사건에 연루된 자에게 실제 살인범과 같은 책임을 지우는 미국의 독특한 법이 홀에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홀은 경찰에서 친구들의 강도 의사를 알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 같은 진술을 했고, 데이비드 리머 검사는 재판에서 배심원들에게 "차가 없었으면 범죄도 없었고, 살인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같이 중범죄를 통한 살인 사건 연루자에게 똑같은 책임을 묻는 원칙이 영국의 관습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영국 의회는 1957년 이를 폐지했다.

인도 등 다른 관습법 국가들도 영국을 따라 폐지했고, 캐나다의 경우 대법원이 1990년 이런 원칙이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인지에 맞춰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위배한다며 이를 폐지했다.

예일대의 제임스 휘트먼 교수는 유럽 국가들의 관점은 사람이 타인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검찰과 피해자 권익 옹호단체들은 공범이 실제 살인자가 아닐지라도 범죄에 연루됐다면 서로의 행동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문은 미국에서 이같이 공범을 살인범과 똑같이 처벌하는 것이 30개 주 이상에서 일반화돼 있다면서 지난 30년간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중범죄에 참여했다가 자신은 비록 아무도 살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80명 가량이라고 전했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 (뉴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