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중에 잠을 자는 판사의 판결을 승복할 수 있는가?"
호주에서 재판 중 판사석에 앉아 졸던 판사가 내린 판결에는 승복할 수 없다며 피고가 항소를 제기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져 항소심 판사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9일 호주 언론이 전했다.
환각제인 엑스터시를 밀수하려고 모의한 죄로 최소 9년형을 선고받은 라파엘 루이스 세산 씨는, 재판 중에 담당 판사가 계속 졸거나 심지어 코를 골기 까며 하며 잠을 잤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심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항소했다.
세산 씨의 변호인 하멘트 단지 씨는 8일 뉴사우스 웨일스 주 형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1심에서 사건을 맡았던 이언 도드 판사에 대해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판사라고 말할 때는 의식이 있는 판사를 말한다"며 잠자는 판사가 내린 판결은 오심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승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세산 씨의 가족과 친구들도 증인으로 출석해 도드 판사가 보인 행태에 대해 소상하게 진술했다.
이들은 도드 판사가 재판 중 한 번 잠에 떨어지면 최고 20분까지도 계속해서 잠을 잤고, 한 시간 동안에 무려 세 번이나 잠을 자는 경우도 보았다면서 특히 오후에는 그 같은 현상이 아주 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드 판사가 잠을 자면서 코를 고는 소리가 방청석에서도 다 들릴 정도였다면서 잠자던 판사가 스스로 코 고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이언 판사를 깨우기 위해 배석 판사들이 일부러 서류 뭉치를 만지작거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변호사들이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두들기거나 헛기침을 하면서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 사건을 맡았던 제프리 벨로우 검사 조차 "판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수면 중 호흡곤란 증세로 고생해온 것으로 알려진 도드 판사는 지난 2005년 7월 판사직을 그만뒀다.
세산 씨는 재판 중 변호사에게 판사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으나 변호사는 담당 판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단지 변호사는, 판사의 행동 때문에 배심원들이 재판에 집중할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자칫 편견까지 갖게 됐을 지 모른다면서, 도드 판사가 배심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잘못된 형량이 내려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성 통신원 koh@yna.co.kr (오클랜드<뉴질랜드>=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