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각) 바티칸시티의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로마에 역병이 창궐하던 1552년 당시 로마 주변에 살던 시민들이 전염병을 멈추는 기적을 바라며 운반해온 것으로 알려진 십자가(왼쪽)를 축으로 그 건너편에 프란치스코 교황(흰옷 차림)이 천막 아래서 ‘우르비 에트 오르비’(라틴어로 ‘로마 도시와 전 세계에’라는 뜻으로, 교황의 공식 축복과 강론)를 하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경제 충격에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결제은행(BIS)이 유럽 역내 및 전 세계 은행들에 “올해 주주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을 중단하라”고 나란히 권고하고 나섰다. 가계와 기업 지원을 위한 대출 실탄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주주가치 극대화’ 전통까지 제동을 거는 전격적이고 놀라운 조처다. 유럽중앙은행은 주주들에게도 “고통에 동참해달라”고 당부했고, 유럽 은행들도 ‘배당금 지급 동결’을 즉각 약속하고 나서는 등 코로나발 경제 충격 방어를 위한 긴급행동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28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내어 역내 은행들에 “코로나발 경제 충격에 맞서, 가계·기업에 제공할 유동성 공급 여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 올해 10월까지 주주들에 대한 배당금 지급과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을 동결·보류하라”고 촉구했다. 영업이익이나 순이익 중에서 기존 ‘주주가치 중시’ 정책에 쓰려고 예정해둔 실탄을 올해는 사용하지 말고 가계·기업에 대한 저리 대출용 현금으로 보유하라는 것이다. 금융시스템 지휘부인 중앙은행의 이런 지침은 사실상 ‘강제 명령’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중앙은행은 또 “역내 은행 주식을 가진 주주들도 이 집단적 노력에 동참해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 세계 정책가들이 글로벌 경제를 지탱하기 위한 전례 없는 재정·통화 확장정책을 펴고 있는 때에 은행과 주주들도 동참하라고 요청한 셈이다. 성명서는 “이 조처로 은행들은 민간의 코로나발 손실을 흡수하고 가계·기업을 향한 대출·지원 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레아 엔리아 유럽중앙은행 감독이사회 의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2008년 위기 때와 달리 은행이 이번 위기의 진원지는 아니다”며 “하지만 미증유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한 축으로 책무를 떠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내 모든 은행이 이번 지침을 따르면 300억유로(약 40조원)의 자본이 추가확보돼 금융시스템에 공급될 수 있다고 추산된다. 이번 조처는 유럽중앙은행이 7500억 유로의 국공채·회사채 매입이라는 ‘막강 바주카포’를 쏘기로 한 뒤에 나왔다.
국제결제은행도 가세했다. 아구스틴 카스튼스 국제결제은행 총재는 이날 “코로나발 경제 급류를 넘어서려면 기업에 (금융)생명줄을 공급해야 한다”면서 “2008년 금융위기 때 필요했던 수단들을 뛰어넘는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며 “은행들이 앞장서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을 중단·동결하는 글로벌 흐름을 만들어 경제를 떠받치는 자본투입 범퍼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중 은행들이 벼랑 끝에 처한 기업들을 돕는 잠재적 대출자이자 중앙은행 같은 ‘최종 대부자’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들도 속속 동참하고 나섰다. 이 권고가 나온 뒤 이탈리아의 최대 은행 유니크레디트는 30일 “올해 주주 배당금 지급을 보류하기로 했다”며 “자사주 매입도 중단해 적정 현금자본을 유지·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은행그룹 라보뱅크·ABN 암로·ING도 이날 “적어도 10월1일까지 주주 배당금 지급을 하지 않고 대출자본 포지션을 강화하겠다”고 동시 선언했다.
앞서 28일 프랑스 정부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모든 기업은 (급여 지급과 실업 예방을 위한 현금 확보를 위해)배당금 지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민간기업들에도 주주 배당 ‘일시 포기’를 권고했다. 이를 따르는 기업에는 세금을 감면·면제해줄 방침이다. 뮈리엘 페니코 프랑스 고용장관은 이날 “소수지분이라도 국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은 올해 배당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노조들도 “국영기업들부터 앞장서 주주 배당금 지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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