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우려가 고조되면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4일 열린 피아트 500 전기차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서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밀라노/AP 연합뉴스
일본·프랑스·미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아시아·유럽·미주대륙 전역에 걸쳐 도심 슈퍼마켓 매장의 상품진열대 선반마다 소독용 얼굴 마스크, 화장지, 손세정제, 식료품들이 순식간에 동난 채로 텅텅 비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전세계 80여개국에 확산되면서 ‘패닉 사재기’가 지구적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5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북쪽 뉴사우스웨일스에 있는 한 슈퍼마켓 매장에 수많은 주민이 화장지를 미리 사놓으려고 몰려들었다. 화장지가 놓여 있던 선반 쪽으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구매 쟁탈전 소동이 벌어졌고,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한 남자 손님이 옆에 있는 다른 고객과 판매원을 갑자기 때리는 등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로 먼저 사려고 옥신각신하는 도중에 이 남성은 칼을 뽑아 들기까지 했다. 경찰이 즉각 현장에 출동했고 테이저건 전자충격기를 쏘아 이 남성을 진압했다.
수많은 사람이 화장지 사재기에 나서자 오스트레일리아의 두 최대 소매 슈퍼마켓업체인 콜스와 울워스는 이날 “매장의 화장지 재고량을 유지하기 위해” 고객 한 사람당 4팩으로 판매량을 일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판매점 현장에는 ‘질서 유지’ 경찰도 투입됐다. 화장지는 생필품으로 여겨지는데다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여러 생산기업들이 코로나19로 장기 휴업에 들어가 곧 ‘품절 사태’가 닥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현재 50여명(사망 2명)이다.
미국도 사재기 열풍의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29일 제롬 애덤스 미 연방정부 위생국장은 트위터에 “진지하게 부탁합니다. 마스크 사재기를 멈춥시다”라고 촉구하며, “허약한 환자들을 돕고 있는 공중보건 의료진이 마스크 부족에 시달리게 되면 우리 모두와 지역사회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고 사재기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일회용 수술용 마스크는 평소에 단 몇센트만 주면 살 수 있었는데 이제 “돈이 되는 장물 재산”으로 바뀌고 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이날 전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얼굴 마스크 사용 권장’ 지침을 아직 내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벌써 사재기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통신은 “중국이 최대 마스크 생산국인데 중국 당국이 자국 내 수요량을 확보하려고 마스크 수출을 제한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4일 인도네시아 경찰은 마스크 사재기 현장을 덮쳐 마스크 500상자 이상을 전격 압수했다. 경찰은 자카르타 서부 탕에랑에 있는 한 창고를 급습해 마스크 180상자(60만장)을 몰수하고 자카르타 시내 한 주택에서도 350상자를 압수했다. 경찰은 “이들이 마크스 판매업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2일 첫 확진자 2명이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확진자를 발표하자마자 마스크값은 평소 1상자당 2만루피에서 무려 50만루피(35달러)로 폭등했고, 자카르타 시민들은 집 근처 슈퍼마켓으로 몰려가 식료품과 손세정제를 마구 사들이고 있다.
<아에프페> 통신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서도 마스크값은 평소 소맷값의 100배 이상으로 치솟고 있고, 프랑스 당국은 “곧 얼굴 마스크 재고와 생산물량을 정부가 징발·통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최근에 트위터에 “(전국적인 생필품 부족) 공포심을 차분히 가라앉히자”는 메시지를 올렸다.
세계보건기구(WHO) 파델라 셰브 대변인은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이런 과잉 행동은 공황 상태에서 빚어지고 있는 매점매석, 투기 심리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소비심리학자 케이트 나이팅게일은 “지금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마치 ‘나 혼자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을 순 없다’는 태도 같다”며, “코로나 백신 개발이나 방역 대처를 둘러싼 서구 각국 보건당국과 의료기업들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허약한 것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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