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 불가리아 출신 여성 경제학자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66)가 사실상 확정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내정자,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WB)·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여성 수석이코노미스트 등 ‘애덤 스미스의 딸들’이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경기침체 도래 등 당면 도전에 맞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지휘부 역할을 맡게 됐다.
10일 국제통화기금 집행이사회는 게오르기에바가 단독으로 차기 총재 후보에 올랐으며 늦어도 10월4일까지 선임을 마무리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설립하면서 기금은 유럽이, 세계은행은 미국이 나눠 맡아 지휘한다는 ‘경제권력 분점’ 불문율을 지켜왔다. 유럽은 게오르기에바를 유럽을 대표하는 단일 후보로 선정해 지난달 국제통화기금에 추천했다.
게오르기에바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을 지낸 뒤 2017년부터 세계은행 최고경영자를 맡아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게오르기에바에 대해 “다자주의 자유무역 기치를 선도해왔으며, 라가르드에 비해 개발도상국 발전 분야에서 더 유능하지만 선진국의 금융 불안 문제에선 경험이 부족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라가르드는 오는 12일자로 국제통화기금 총재직에서 사임하고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11월 취임한다.
두 총재에 더해 현재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 등 3대 국제 경제기구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자리를 모두 여성 경제학자가 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는 기타 고피나트(47·하버드대 교수)는 인도 델리대를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금의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여성이 임명된 건 사상 처음이다. 고피나트는 외환·경제위기가 터지기 전에 국제통화기금이 글로벌 시장에 선제개입해야 한다는 이른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임명된 피넬로피 골드버그(56·예일대 교수)는 그리스 출신으로, 세계은행 창립 뒤 앤 크루거(1982~86년)에 이어 두번째 여성 수석이코노미스트다. 2011년에 경제학 저널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의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있는 프랑스 출신 여성 경제학자 로랑스 분(50)은 2014~2016년에 프랑스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일했다. 국제 경제기구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 조사·분석을 이끄는 자리로,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지적 리더십’을 갖추고 있을 것을 흔히 요구받는다.
그동안 학계에서 페미니즘 경제학 등을 중심으로 빼어난 여성 경제학자들이 있었으나, 현실 국제 경제기구의 주요 자리에 앉아 요동치는 글로벌 경제를 분석·전망하고 전세계 경제를 향해 ‘책임 있는 발언’을 할 자리에 있는 여성은 드물었다. 최근에 일종의 ‘현상’으로 등장한 여성 경제학자들의 대대적 진출에 대해 16세기 말 엘리자베스 1세가 틸버리 고원에서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는 말이 흔히 회자된다. “나는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여성의 육신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 왕의 담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대들의 장군이요, 재판관이자 그대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다.”
기존의 남성 경제학자들이 경제발전에 매달려왔다면, 이제 기후변화 위협 등이 새로운 글로벌 경제 이슈로 등장하면서 여성 경제학자들의 역할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오르기에바는 1990년대에 세계은행에서 환경담당 경제학자로 활동했고, 라가르드는 국제통화기금 총재 시절 기후변화, 여성 노동, 불평등 문제를 주로 언급해왔다. 미국과학재단(NSF)에 따르면, 미국 내 420여개 대학의 신규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자는 2017년에 총 1237명(성별 미보고 학위 취득자 포함)으로 남성은 812명, 여성은 423명이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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