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각) 류허 중국 부총리가 이틀간의 무역협상을 마치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 청사를 나서면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가운데),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오른쪽)의 배웅을 받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이 10일(현지시각) 예고대로 중국산 수입품 2천억달러어치의 관세를 10%에서 25%로 인상한 데 이어, 약 3천억달러어치에 이르는 나머지 상품에도 관세 부과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히며 무역전쟁이 끝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두 대국 간 패권 경쟁 성격이 짙은데다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이유로 ‘국가 존엄’까지 언급하고 있어 타협의 가능성이 점점 줄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고위급 무역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이튿날인 11일 트위터로 다시 중국을 압박했다. 그는 “중국이 최근 협상에서 한대 세게 맞았다고 생각해 2020년 대선까지 기다릴 것 같다”며 “만약 내 두번째 임기에 다시 협상을 한다면 그것은 훨씬 어려운 거래가 될 것이다. 당장 움직이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전날 성명에서 “대통령은 약 3천억달러어치인 나머지 수입품 관세를 올리는 작업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조처가 현실화되면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전체(지난해 5395억달러어치)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첨단 제품을 중심으로 한 중국 상품 500억달러어치에 관세 25%를 매기고 있다. 무역대표부는 추가 관세의 상세한 내용을 13일 누리집에 올리기로 했다. 공청회 등을 고려하면 실제 부과까지는 두달가량 준비기가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중국에게 빠른 시기에 협상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트윗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갈무리
미국이 중국을 굴복시키려고 ‘최대의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중국은 결연히 맞선다는 자세를 보였다. 특히 10일 워싱턴에서 협상을 마친 류허 부총리는 이례적으로 중국 언론을 불러 모아 ‘파격 발언’을 이어갔다. 그가 전한, 협상을 불발시킨 3대 쟁점은 △관세 철회 조건 △무역 불균형 시정 규모 △합의문 내용이다.
첫째, 중국은 협상이 타결되면 모든 관세를 즉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합의 이행 상황을 보며 단계적으로 하겠다며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로 무역 불균형 시정과 관련해선, 중국이 무역흑자를 줄이려고 사겠다고 밝힌 농산물·에너지 등의 구입액이 미국의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결에 핵심 걸림돌이 된 것은 ‘합의 문서 내용’인 것으로 추정된다. 류 부총리는 “어떤 국가도 자기의 존엄을 갖는다. 합의문은 형평이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협상단은 지식재산권 및 산업보조금과 관련해 중국 국내법을 개정한다는 문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중국은 5월 초 협상에서 이를 받아들였지만, 중국공산당 안에서 “너무 양보했다”며 협상단을 맹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이를 합의를 뒤집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류 부총리는 중국이 자국 주권과 관련된 사안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국가 존엄’ ‘형평’ 등의 단어를 썼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국내법을 바꿔 ‘중국제조 2025’를 비롯한 산업정책 등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주권 문제로 인식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은 대만이나 티베트 문제 등 주권과 관련된 문제엔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와 관련해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 주석이 협상단 출발을 앞두고 “모든 가능한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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