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거리를 가득 매운 오토바이와 차량들. 하노이/EPA 연합뉴스
하노이에서 개최되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 개혁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이머이 노선을 채택한 베트남처럼 북한도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성공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개발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 문제와 중첩되어 있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미 2002년 7월 실리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북한은 부분적인 경제개혁 조치를 추진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2012년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 조치에 이어 다양한 경제개발구 정책을 통해 지역개발과 산업회생을 위한 조치를 시행했다. 지난해 4월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핵개발을 중단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새 전략노선을 발표했다.
도이머이 노선을 채택한 베트남도 전면적인 개혁개방 이전에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1979년 ‘신경제정책’을 통해 부분적 개혁조치를 수년간 추진했지만, 오히려 재정적자가 누증되면서 물가가 급등했다. 1985년에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경제 불안정은 더욱 심화되었다. 재정과 금융이 통합되어 있는 계획경제체제에서 도입된 부분적인 개혁조치는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경제적 불안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각한 재정난과 부분적인 경제개혁의 부작용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개혁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개혁 이전 베트남은 중국과는 달리 사회주의 국가 간의 경제협력 조직인 코메콘(COMECON)체제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80년대 중반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불어닥쳐 구소련의 지원이 사실상 중단되고 동유럽 국가들과도 교역관계가 단절되면서 심한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결국 1986년 도이머이 노선을 채택해 경제자유화와 개방화를 표방했고, 개혁 초기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하는 등 적극적인 외자 유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989년 캄보디아로부터 베트남군이 철수하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해제되기까지는 큰 성과가 없었다.
1991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로드맵이 돌파구가 됐다. 미국은 1992년 임시연락대표부를 설치하고 부분적인 제재 해제를 통해 국제금융기관의 지원을 허용했고, 베트남은 개혁노선을 뒷받침하기 위해 1992년 헌법을 개정하고 본격적으로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국영부문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민간부문과 외자기업에 기반한 다부문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시장경제를 확대하고 경제분권화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두차례의 헌법 수정을 통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라고 명시하고(51조),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개혁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경우 북한도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혁조치를 확대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시장메커니즘에 기초한 분권적 자원배분체제로 전환하려면 재정·금융개혁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시장 기능이 취약했던 베트남은 정부 주도로 재정과 금융을 분리하여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중국과는 달리 베트남은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아래 재정·금융개혁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면서 거시경제 안정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경제개발과 산업화를 위해서는 기업 개혁과 소유제 개혁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가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베트남은 급속한 민영화보다는 국유기업 개혁에 우선순위를 뒀다. 북한도 금융체제 개편과 세제개혁을 통한 재정기반 강화가 시급하고, 경쟁적 시장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국유기업 개혁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혁 초기 베트남은 농업 인구가 70%에 이르는 전형적인 농업국가로서 농업개혁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국영기업이 주도하는 제조업 기반은 취약하였다. 개혁 초기 1만2000여개에 이르던 베트남의 국영기업은 2017년 2500개 수준으로 구조조정되고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0% 수준에서 28%로 크게 낮아졌다. 반면에 외자기업의 국내총생산 비중은 20%에 불과하지만 베트남 수출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성장의 엔진은 외자 유치에 기반한 수출 확대라고 할 수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5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 앞으로 관광객들을 태운 인력거들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의 경우 지난 30여년간 도이머이 노선을 추진했음에도 여전히 제조업 비중은 국내총생산의 17%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공업 기반이 베트남보다 우수하고 제조업 비중도 20% 수준을 넘어서고 있어서 초기 조건은 더 유리하다. 북한도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향후 북한 개혁·개방의 진로와 경제개발 여건은 긍정적이다. 베트남과 중국 모두 저임노동력을 활용한 선진시장의 우회수출기지로 부상하면서 순조롭게 대규모 외자유치와 개발재원 조달에 성공했다.
이행의 속도와 순서는 다르겠지만 북한의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하노이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식 개혁모델을 북한 경제의 진로와 향후 정책에 어떻게 적용할지 주목된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